◎국토개발연구원 이정식 실장/“쾌적한 국토” 새 설계에 도전/“지역 균형개발,환경오염ㆍ훼손 방지 주력/통일된 「한반도 개발」 구상 기회 왔으면… ”
90년대 우리나라는 「모든지역이 골고루 풍요롭고 쾌적한 국토」로 가꾸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있다.
이 일에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 있는 국토개발연구원의 국토개발연구실장 이정식박사(45)는 그래서 90년대들어 가장 바쁜 사람의 하나가 됐다.
국토개발연구원은 지난달말 74명의 연구진으로 국토개발계획단을 구성,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는데 온 힘을 다 하고 있다.
이 계획단의 단장은 부원장인 조정제박사(51)이고 이박사는 ▲개발목표 및 전략 ▲도시ㆍ농어촌의 정주체제 ▲산업입지 ▲교통 및 통신 ▲국민생활환경 ▲국토이용관리 ▲투자재원의 조달 등 7개 부문 연구진을 총괄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제3차 국토종합개발은 오는 92년부터 2001년까지 시행되나 그 계획은 이박사 등에 의해 올해안에 시안을 마련,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가진 뒤 내년 상반기에 공청회 등을 거쳐 확정된다.
따라서 이박사 등 연구진에겐 올해가 가장 바쁜 해일수밖에 없다.
『일자리 주거 교육 문화에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국제화 개방화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환경오염을 줄여 쾌적한 국토로 만드는 것』이 이번 「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요체라는 것이 이박사의 설명이다.
이박사는 『전국의 대도시ㆍ중소도시 개발 및 지역균형발전,농어촌과의 유기적인 통합,고속도로ㆍ철도ㆍ항만 등 교통망과 통신망의 배치,신공업단지의 건설,댐ㆍ하천정비ㆍ간척사업ㆍ농림수산자원의 이용은 물론 주택ㆍ상하수도 등 생활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국토개발과 관련된 방대한 부문을 구체적으로 다루게 되지만 「균형」과 「인간화」의 정신을 충분히 살려 삶의 질을 보다 높이는데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72년부터 81년까지의 첫 국토개발계획(1972∼1981년)과 82년부터 91년까지의 2차계획은 정부의 수출주도 정책에 따라 수도권을 비롯한 부산 대구 등 몇개 거점지역만 육성시켜 지역간 불균형과 인구밀집현상 등 부작용을 낳았을뿐 아니라경제성만을 앞세워 국토를 훼손하고 환경오염을 심화시키는 등 적지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그러나 이박사는 이에대해 『1,2차 계획이 수립될 당시의 원안자체는 그대로 집행만됐다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습니다만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여건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뜯어 고쳐지는 바람에 일관성을 잃었고 부작용까지 일으켰다』고 아쉬워하면서 이번에는 그런 시행착오가 없기를 바랐다.
이박사가 국토개발계획연구에 처음 참가한 것은 2차 계획수립이 마무리단계에 들어서던 지난81년.
같은해 이박사는 미국 하와이대에서 지리학박사학위를 받고 국내대학으로부터 교수초빙을 받았으나 이를 마다하고 『국토개발계획을 내손으로 직접 수립해보겠다』는 신념으로 국토개발연구원에 들어갔다.
『국토개발은 자손만대에 물려준다는 생각으로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하며 그것은 한번 잘못되면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이박사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토개발계획만큼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수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효율적으로 개발하되 더욱 아름답게 보존하는 것과 통일이 돼 한반도 전체의 국토개발계획을 세우는 것』이 이박사의 소망이다.<황성기기자>
90년대 우리나라는 「모든지역이 골고루 풍요롭고 쾌적한 국토」로 가꾸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있다.
이 일에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 있는 국토개발연구원의 국토개발연구실장 이정식박사(45)는 그래서 90년대들어 가장 바쁜 사람의 하나가 됐다.
국토개발연구원은 지난달말 74명의 연구진으로 국토개발계획단을 구성,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는데 온 힘을 다 하고 있다.
이 계획단의 단장은 부원장인 조정제박사(51)이고 이박사는 ▲개발목표 및 전략 ▲도시ㆍ농어촌의 정주체제 ▲산업입지 ▲교통 및 통신 ▲국민생활환경 ▲국토이용관리 ▲투자재원의 조달 등 7개 부문 연구진을 총괄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제3차 국토종합개발은 오는 92년부터 2001년까지 시행되나 그 계획은 이박사 등에 의해 올해안에 시안을 마련,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가진 뒤 내년 상반기에 공청회 등을 거쳐 확정된다.
따라서 이박사 등 연구진에겐 올해가 가장 바쁜 해일수밖에 없다.
『일자리 주거 교육 문화에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국제화 개방화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환경오염을 줄여 쾌적한 국토로 만드는 것』이 이번 「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요체라는 것이 이박사의 설명이다.
이박사는 『전국의 대도시ㆍ중소도시 개발 및 지역균형발전,농어촌과의 유기적인 통합,고속도로ㆍ철도ㆍ항만 등 교통망과 통신망의 배치,신공업단지의 건설,댐ㆍ하천정비ㆍ간척사업ㆍ농림수산자원의 이용은 물론 주택ㆍ상하수도 등 생활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국토개발과 관련된 방대한 부문을 구체적으로 다루게 되지만 「균형」과 「인간화」의 정신을 충분히 살려 삶의 질을 보다 높이는데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72년부터 81년까지의 첫 국토개발계획(1972∼1981년)과 82년부터 91년까지의 2차계획은 정부의 수출주도 정책에 따라 수도권을 비롯한 부산 대구 등 몇개 거점지역만 육성시켜 지역간 불균형과 인구밀집현상 등 부작용을 낳았을뿐 아니라경제성만을 앞세워 국토를 훼손하고 환경오염을 심화시키는 등 적지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그러나 이박사는 이에대해 『1,2차 계획이 수립될 당시의 원안자체는 그대로 집행만됐다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습니다만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여건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뜯어 고쳐지는 바람에 일관성을 잃었고 부작용까지 일으켰다』고 아쉬워하면서 이번에는 그런 시행착오가 없기를 바랐다.
이박사가 국토개발계획연구에 처음 참가한 것은 2차 계획수립이 마무리단계에 들어서던 지난81년.
같은해 이박사는 미국 하와이대에서 지리학박사학위를 받고 국내대학으로부터 교수초빙을 받았으나 이를 마다하고 『국토개발계획을 내손으로 직접 수립해보겠다』는 신념으로 국토개발연구원에 들어갔다.
『국토개발은 자손만대에 물려준다는 생각으로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하며 그것은 한번 잘못되면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이박사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토개발계획만큼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수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효율적으로 개발하되 더욱 아름답게 보존하는 것과 통일이 돼 한반도 전체의 국토개발계획을 세우는 것』이 이박사의 소망이다.<황성기기자>
1990-02-0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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