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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시력 잃은 보르헤스 돌본 일본계 부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시력 잃은 보르헤스 돌본 일본계 부인

임병선 기자
입력 2023-03-28 08:47
업데이트 2023-04-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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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두 번째 부인으로 26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마리아 코다마가 2018년 10월 28일 전 남편의 초상 아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당시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아르헨티나를 찾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보르헤스 재단을 방문하기로 한 전날이었다.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두 번째 부인으로 26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마리아 코다마가 2018년 10월 28일 전 남편의 초상 아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당시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아르헨티나를 찾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보르헤스 재단을 방문하기로 한 전날이었다.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20세기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의 영미문학 교수로 일하던 1950년대 후반 시력을 잃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유전 질환 탓이었다.

앞을 못 보는 그가 불러주는 대로 작품을 타이프한 것은 어머니와 비서, 친구들이었다. 일본인 아버지와 유럽 혈통 아르헨티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리아 코다마는 10대 때 보르헤스 강의를 들은 인연으로 함께 30년 넘게 문학 공부를 하며 그의 비서로 일했다.

1986년 4월 26일, 당시 87세였던 보르헤스와 49세였던 코다마는 결혼했다. 두 사람 나이 차는 38세였고, 보르헤스는 재혼이었다. 예식을 올린 곳은 파라과이 아순시온, 아르헨티나 결혼법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자연스럽게 세상사람들은 보르헤스의 유산을 노리고 결혼한 것이라고 쑤군댔다. 실제로 간암으로 투병했던 보르헤스는 두 달 뒤인 6월 1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별세했다.

그런 코다마가 지난 26일(현지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유방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현지 매체 라나시온과 텔람 통신이 유족들의 말을 빌어 다음날 전했다. 향년 86, 보르헤스와 똑같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유산을 챙기려는 결혼이란 뒷말이 많았지만 코다마는 1967년 어느 미망인과 혼인해 3년이 채 안돼 막을 내린 보르헤스의 첫 결혼 생활을 제외하고 약 30년 넘게 그의 곁을 지키며 그를 보호했다는 평가가 더 많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보르헤스의 유일한 상속자였던 코다마는 남편 사망 후 재혼하지 않은 채 보르헤스 국제 재단을 설립하고 그의 작품을 관리하는 데 여생을 보냈다.

이 과정에 외국어 번역 로열티를 비롯한 판권 등에 대해 번역가 또는 출판사와 법적 소송을 벌이기도 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보르헤스는 연작 형태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소설 ‘픽션들’을 비롯해 ‘불한당들의 세계사’, ‘알레프’, ‘모래의 책’ 같은 세계적인 소설과 수필 등을 남겼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꼽혔으며, 방대한 독서량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 저작으로 ‘20세기 도서관’으로도 불렸다.

보르헤스는 “나는 늘 낙원을 상상했는데 그것은 도서관의 모습일 것”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임병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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