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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 투자도 ‘황제’…“은퇴 후 더 벌어” 유산 액수가

펠레, 투자도 ‘황제’…“은퇴 후 더 벌어” 유산 액수가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23-01-02 12:50
업데이트 2023-01-0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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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전 연봉 600만달러
친자로 인정된 자식 6명

펠레가 1998년 유나이티드와 리버풀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 하프타임 때 그라운드에서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펠레가 1998년 유나이티드와 리버풀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 하프타임 때 그라운드에서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지난 23일 딸 켈리가 공개한 부친 펠레를 병상에서 안고 있는 모습.
지난 23일 딸 켈리가 공개한 부친 펠레를 병상에서 안고 있는 모습.
월드컵에서 세 차례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축구 황제’ 펠레(82)가 은퇴 후 모은 재산으로 가족들에게 한화로 약 1260억원의 유산을 남겼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왔다.

2일(한국시간) 브라질 현지 언론에 따르면 펠레가 유족들에게 남긴 유산은 1억 달러에서 1억 1500만 달러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대 최고의 축구 스타였던 펠레는 1975년 당시 축구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미국 뉴욕 코스모스에 입단하면서 연봉 450만 달러를 받았다. 당시 미국 스포츠계를 통틀어서도 최고의 연봉이었다. 브라질 언론은 “은퇴하기 전까지 코스모스에서 펠레의 연봉은 600만 달러까지 뛰었다”며 “세계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펠레는 막대한 부를 쌓았다”고 설명했다.

펠레는 2020년 인터뷰에서 “나는 오늘날 축구선수들처럼 축구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되지 않았다. 은퇴 후 광고를 통해 축구선수 때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다. 광고 제안이 정말 많았지만 담배, 술, 정치와 관련된 광고에 나선 적은 없다”며 은퇴 후 벌어들인 재산이 더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

펠레는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착실하게 부동산 등에 투자했다. 그는 1979년 미국 햄튼스에 15만 6000달러를 주고 구입한 주택을 2018년 285만 달러에 매각하는 등 투자한 부동산을 오랫동안 보유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시세차익을 봤다.

현지 언론은 펠레의 라이벌이었던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를 언급하며 “명성에 비해 큰 유산을 남기지 못한 마라도나와 달리 펠레는 착실한 관리로 최소 1억 달러, 최대 1억1500만 달러로 추정되는 유산을 가족들에게 남겼다”고 전했다.

펠레가 남긴 유산은 부인과 자식들에게 상속된다. 펠레의 부인은 2016년 결혼해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킨 25세 연하 마르시아 아오키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지만 앞서 펠레는 앞선 두 번의 결혼 생활에서 친자로 인정된 자식 6명을 낳았다. 펠레가 인정하지 않은 혼외자도 1명 있었지만 암 투병 끝에 42세로 사망했다.

펠레 사망 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오늘 평화롭게 세상을 떠난 ‘황제‘ 펠레의 여정에는 영감과 사랑이 깃들었다. 그는 스포츠에 관한 천재성으로 세계를 매료했고, 전쟁을 멈추게 했고, 전세계에서 사회적 사업을 수행했으며,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치료법이라고 믿었던 사랑을 퍼뜨렸다. 그의 메시지는 미래 세대들에게 유산이 된다. 사랑, 사랑, 사랑. 영원히”라고 적힌 게시물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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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황제’ 펠레가 29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대장암 투병 도중 향년 82세로 사망했다. 펠레는 현역 생활 동안 1천363경기에 출전해 1천281골을 터트리며 ‘축구황제’로 칭송받았다. 그는 1958년, 1962년, 1970년 세 차례 월드컵 대회 우승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다. 사진은 2012년 1월 9일 스위스 취리히 콩그레스하우스에서 열린 2011 국제축구연맹(FIFA)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왼쪽)가 발롱도르 트로피를 들고 펠레와 서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축구황제’ 펠레가 29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대장암 투병 도중 향년 82세로 사망했다. 펠레는 현역 생활 동안 1천363경기에 출전해 1천281골을 터트리며 ‘축구황제’로 칭송받았다. 그는 1958년, 1962년, 1970년 세 차례 월드컵 대회 우승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다. 사진은 2012년 1월 9일 스위스 취리히 콩그레스하우스에서 열린 2011 국제축구연맹(FIFA)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왼쪽)가 발롱도르 트로피를 들고 펠레와 서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펠레 인스타그램
펠레 인스타그램
월드컵 3회 우승…펠레라는 이름은 ‘별명’
펠레는 1940년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드송 아란치스 두나시멘투로로 펠레라는 이름은 별명이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구두닦이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축구선수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펠레는 16살 때 브라질 산투스FC에서 프로 데뷔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펠레는 1958 스웨덴월드컵에 출전해 4경기 6골을 터뜨리며 브라질에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겼다. 이때 나이가 겨우 만 17살이었다. 1962 칠레 월드컵과 1970 멕시코 월드컵 우승을 이끌면서 ‘축구 황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월드컵 통산 12골 8도움. 월드컵 3회 우승이란 대기록으로 브라질에서 펠레는 축구 영웅 그 이상이었다. 그는 브라질에서 ‘국보’ 대접을 받았고, 유럽 명문 구단들이 그를 데려갈 수 없도록 하는 조처가 취해지기도 했다.

선수생활에서 은퇴한 펠레는 정치인으로 변신해 스포츠계 반부패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군사정권 반대 운동을 벌였던 사회학자 페르난두 카르도주가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체육부 장관을 맡았다.

펠레는 세상을 떠나기 전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가 2022 카타르월드컵 우승컵을 든 모습을 지켜봤다. 메시는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에 이어 역대 세번째로 ‘고트’(GOAT·역대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다. 펠레는 결승전이 끝난 뒤 인스타그램에 “메시가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축구 인생에 걸맞은 결과”라며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축하한다. 디에고 마라도나도 웃고 있을 것”이라고 축하를 건넸다.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의 펠레가 월드컵 트로피를 들고 있는 모습. 펠레 인스타그램 캡처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의 펠레가 월드컵 트로피를 들고 있는 모습. 펠레 인스타그램 캡처
김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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