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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유대인 아이들 구한 덕일까, 우리 할머니 100세까지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유대인 아이들 구한 덕일까, 우리 할머니 100세까지

임병선 기자
입력 2022-06-24 15:13
업데이트 2022-06-25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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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할머니 안드리 게울렌이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한 요양원에서 돌아가셨어요. 100세를 꽉 채우고 돌아가셨으니 복받으신 거죠.

나치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했을 때 저희 할머니는 스무 살의 교사였어요. 여학생만 다니는 학교였는데 어느날부터 몇몇 아이가 옷에 노란 별을 붙이고 나타나더래요. 물론 아예 사라진 아이도 있었고요.

해서 저희 할머니는 유대인이 아닌 아이들을 포함해 모든 아이들에게 앞으로 학교 올 때는 에이프런을 둘러 혐오에 가득 찬 상징을 가리라고 말씀하셨대요. 그건 시작에 불과했어요. 할머니는 적어도 300명의 유대인 아이들 목숨을 구하셨고, 홀로코스트 기간에는 동료 레지스탕스들과 힘을 합쳐 2000명 이상을 구하셨대요. 참 대단하시죠. 저희 할머니.

저희는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USA투데이가 인터뷰한 손자 니콜라스 부르니앗과 손녀 줄리 헬렌보슈에요. 할머니의 사인은 공개하지 않았지요.

할머니가 열다섯 살 때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어요. 할머니는 공화파 난민을 도왔고, 증조할아버지는 왕당파라 사사건건 충돌했대요. 부유해 보수적인 집안에 유일한 반항아셨대요.

유대인 아이들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행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대요. 교장 선생님 오딜 오바트가 마침 레지스탕스 조직에 들어 있어 1942년 유대방어위원회 멤버였던 이다 스테르노를 소개해주셨대요. 유대인 아이들을 나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을 함께 하기로 하고 모리스 하이버, 스테르노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본인은 연결고리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셨대요.

그 시스템에는 세 분과가 있었는데 모두 여성들이고, 대부분 사회활동가들이었다. 재정을 담당하는 곳, 아이들을 맡을 가정이나 수도원을 찾는 곳, 그리고 할머니가 속했던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곳이었어요. 할머니는 금발이고, 독일어를 알고 유대인이 아니라 세 번째 분과에 들어갔대요.”

할머니는 유대인 가정을 찾아가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하루이틀 뒤 다시 올테니 미리 가방을 준비하세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설명하고, 아이에게 새 이름을 알려줬지만 새로 살 곳의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대요. 브뤼셀이나 외곽은 물론, 전국을 누비셨대요.
아이들의 이름을 암호처럼 꾸며 공책에 기입하셨대요. 전쟁이 끝나 아이와 가족을 만나게 도우면서도 발각돼 일망타진되지 않게 했다는 거죠. 어떤 공책에는 진짜 이름을 숨겨놓고, 다른 공책에는 가짜 이름만 나열했대요. 어떤 공책은 진짜 주소, 다른 공책은 가짜 주소를 기재했대요. 공책을 보관하는 곳도 공간마다 달랐고요. 해서 숨겨진 아이 가운데 한 명도 잡히지 않았답니다.

종전 후에는 아이들과 부모 상봉을 도우셨대요. 처음에는 “Aide aux Israelites Victimes de la Guerre,”란 조직과 함께 일하다 나중에 유엔 재건복구청의 미군 부대와 함께 하셨대요. 미군 지프도 운전하셨대요. 실제로 상봉한 것은 아주 운 좋은 경우였대요. 대부분은 고아가 돼 몇년 동안 그들을 돌보셨대요.

무척 위험한 일이었죠. 할머니의 그 시절 흑백사진 중에는 유명한 것이 있어요. 거리를 걷는 할머니 뒤를 게슈타포 요원이 미행하는 모습을 누군가 촬영한 것이죠. 그 때 할머니의 신발 뒤축에는 피신시켜야 할 두 아이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들어 있었대요.

한 번은 한 아이에게 “이게 네 새로운 이름이란다”라고 얘기했는데 옆사람이 돌아서며 “너 참 귀엽게 생겼구나, 이름이 뭐니”라고 물었는데 그 아이가 할머니를 돌아보며 “어느 이름을 말해야 하는 거에요, 진짜요, 가짜요?”라고 되물은 적도 있었다고 했어요.

할머니는 사람들을 좋아하셨다. 호텔에서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통역 자원봉사를 하셨다. 할머니 집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가 숨겨준 아이들도 찾아왔다. 매우 꼿꼿하셨어요. 우리가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할머니는 일찍 은퇴해 우리 교육에 집중하셨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테이블을 떠나지도 못했어요.

어렸을 때는 할머니가 그렇게 많이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할머니가 숨겨준 아이들도 그다지 떠들지 않는다. 그들도 나중에야 자신이 숨겨졌으며,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숨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내(니콜라스)가 전쟁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열 살 때였어요. 우리 할아버지는 유대인이었으며, 두 형제만 빼고 온가족이 아우슈비츠에서 숨졌어요. 그 중 한 명은 아우슈비츠에서도 살아 나왔죠. 그분의 몸에 새겨진 문신을 보고 처음 대화를 나눴던 일도 기억 나요. 할아버지는 한 번도 그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부모를 여읜 트라우마가 너무 심하셨어요.

1980년대 중반 들어서야 숨겨진 아이들은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우리집에 찾아와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제야 할머니도 저희들에게 겪은 얘기를 시작했어요.

세 아이를 둔 어머니 얘기를 들려줬는데 셋을 피신시켜야 할 상황이었다. 열 살, 일곱 살, 다섯 살이었다. 그 어머니는 다섯 살 아들을 떼놓을 수 없다고 했다. “내게 일이 생기면 아들도 그럴 것이다.” 정말로 닷새 뒤 끌려가 죽었다.

할머니는 그 때 아이 엄마였더라면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며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떼놓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얘기하곤 하셨어요.

하여튼 할머니는 1989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야드 바셈 관장으로부터 열방의 의인들(Righteous Among the Nations) 인증을 받으셨어요. 모두 저희 할머니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해주세요. 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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