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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잘하는 할머니 배우 되겠다고 했잖아요

연기 잘하는 할머니 배우 되겠다고 했잖아요

이은주 기자
이은주 기자
입력 2022-05-08 22:08
업데이트 2022-05-09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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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강수연 55세로 별세

뇌출혈로 의식 불명… 끝내 숨져
‘씨받이’ 등 작품으로 월드스타
베니스 등 유수 영화제서 수상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원조
유작 ‘정이’ 공개 앞두고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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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연이 8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빈소에 마련된 영정 사진 속에서 다소곳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구본창 작가가 찍은 사진이다. 고강수연배우장례위원회 제공
강수연이 8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빈소에 마련된 영정 사진 속에서 다소곳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구본창 작가가 찍은 사진이다.
고강수연배우장례위원회 제공
늙어서도 연기를 잘하는 할머니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한국이 낳은 최초의 ‘월드 스타’ 강수연이 하늘로 떠났다.

지난 5일 뇌출혈로 쓰러진 강수연은 병원으로 옮겨져 의식불명 상태에서 치료를 받았다. 온 국민이 쾌유를 기원했으나 7일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55세를 일기로 숨졌다.

강수연은 1980~9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한국 영화를 세계 무대로 이끈 ‘한류 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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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제26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에 함께 출연한 이영하(왼쪽)와 함께 남녀주연상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 연합뉴스
1987년 12월 제26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에 함께 출연한 이영하(왼쪽)와 함께 남녀주연상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는 이른바 ‘길거리 캐스팅’으로 네 살 때 동양방송(TBC) 전속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평생 40여편을 찍으며 헌신한 영화계 데뷔작은 ‘핏줄’(1975).

아역 배우로 사랑받던 강수연은 손창민과 함께 출연한 KBS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86)를 통해 하이틴 스타로 입지를 다졌다. 이 인기에 힘입어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2’(1985)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성인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스무 살 때인 1987년에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등 무려 6편에 달하는 주연작이 개봉하며 일찌감치 전성기를 열었다.
임권택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에서 고인이 연기한 순녀가 비구니가 되기 위해 머리를 깎는 장면. 태흥영화사 제공
임권택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에서 고인이 연기한 순녀가 비구니가 되기 위해 머리를 깎는 장면.
태흥영화사 제공
매력적인 외모와 탁월한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로 사랑받은 그는 임권택 감독과 만나 파란만장한 한국 여인의 삶을 깊이 있게 표현하며 세계적인 배우로 도약했다. 1987년 임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춘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한국 배우가 세계 3대 영화제 주연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4박 5일에 걸쳐 출산 장면을 연기한 그의 수상은 변방에 머물던 한국 영화에 대한 세계의 시선을 바꾼 계기가 됐다. 1989년에는 비구니를 연기한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월드 스타’로 거듭났다. 당시 여배우로는 흔치 않았던 삭발은 그의 열정을 오롯이 보여 줬다는 평가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경마장 가는 길’, ‘베를린 리포트’(이상 1991) 등 코리안 뉴웨이브 작품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한국 영화 부흥기의 중심에 선 강수연은 충무로에서 ‘흥행 보증 수표’로 통했다. ‘그대안의 블루’(1993)에서는 국내 최초로 억대 출연료(2억원)를 받는 기록을 썼다. 페미니즘 계열로 분류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에서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맡아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2001년에는 SBS 드라마 ‘여인천하’의 주인공 정난정 역할을 맡아 오랜만의 안방극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최고 시청률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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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부산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에 선출된 고인이 소감을 밝히는 모습. 연합뉴스
2015년 7월 부산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에 선출된 고인이 소감을 밝히는 모습.
연합뉴스
강수연은 2011년 임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 개봉 이후로는 평소 친분이 깊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의 단편 ‘주리’(2013)에 얼굴을 비쳤을 뿐 사실상 연기 활동을 중단했다. 대신 2015년부터 3년간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행정가로 활동했다. 작품 활동은 없었지만 한국 영화사에 기록될 명대사를 남기기도 했다. ‘베테랑’(2015)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얼굴을 뜻하는 일본어. 한국에선 자존심의 속된 말로 쓰인다)가 없냐”다. 류승완 감독이 무명 시절 술자리에서 강수연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을 기억해 뒀다가 썼다고 한다.

강수연은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SF 영화 ‘정이’를 통해 복귀를 앞뒀으나 유작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국내 영화계와 영화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은주 기자
2022-05-0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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