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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더 이상 반복되지 않길”···28년만에 용기 낸 ‘미투’

[단독]“더 이상 반복되지 않길”···28년만에 용기 낸 ‘미투’

곽소영 기자
곽소영 기자
입력 2021-11-15 23:26
업데이트 2021-11-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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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서 28년만의 ‘미투’
작가가 꿈이었던 고발자 김은희씨
사건 이후 양극성 장애·PTSD 등
“비슷한 사람들에 연대 보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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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서 28년 전의 ‘미투’를 고발한 김은희(가명)씨가 본인과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에게 용기와 연대의 말을 전하고 싶다며 15일 직접 작성한 손글씨. 곽소영 기자 soy@seoul.co.kr
▲ 고려대서 28년 전의 ‘미투’를 고발한 김은희(가명)씨가 본인과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에게 용기와 연대의 말을 전하고 싶다며 15일 직접 작성한 손글씨.
곽소영 기자 soy@seoul.co.kr
‘축축한 늪을 헤집고 헤집었다(…) 지워지지 않는, 지워지지 않는(…)’

김은희(47·가명)씨가 자신의 열여덟을 회상하며 쓴 시 ‘첫 오티’에는 28년동안 김씨가 겪었던 감정이 고스란히 묘사돼있다. 김씨는 ‘진흙 같던’ 시간을 견딘 후 자신이 겪은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15일 오전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에 ‘나는 나를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98년 졸업생 김은희’라고 밝힌 작성자는 1993년 설악산 콘도로 신입생 오티를 갔던 날의 일을 상세히 적었다.

그날 김씨는 처음 마셔보는 술에 잠이 들었고, 문득 눈을 뜨니 헝클어진 자신의 옷매무새와 코를 골며 잠을 자는 복학생 A씨가 눈에 들어왔다. 김씨는 그렇게 대학 생활의 첫 날, 28년간 잊을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렸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괴로웠던 기억을 스스로 꺼낸 이유에 대해 “사회와 대학 문화가 여전히 달라진 게 없어 공론화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땐 몸 관리를 못한 제 잘못이라고 생각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사회에서, 학교에서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보며 견디기 힘들었고, 더 이상 피해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고백하게 됐다”고 했다.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소설가가 되려고 했던 김씨의 꿈은 4학년 말 양극성 장애를 진단 받으면서 좌절됐다. 조울병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겹쳐 지금도 약을 복용한다. 대학생활 내내 잊으려고 노력했던 기억은 김씨의 말마따나 “참담한 청춘”으로 시시각각 덮쳤다. 김씨는 “졸업 후 A씨를 불러 사과를 하라고 했더니 ‘김은희는 참 아름다웠습니다’라고 사과문을 쓴 것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며 “사과문을 찢고 소금을 뿌렸다”고 회상했다.

A씨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김씨의 주장을 시인했다. 그는 “술에 취해 실수를 했지만 성폭행은 아니었고 10년 전쯤 찾아가 사과를 했다”며 “제가 잘못한 것은 사과를 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학원에서 정신건강 간호학을 전공하고 봉사와 상담활동을 다니고 있다. 시로 마음을 치료하는 ‘시 치료’를 공부하고 있다는 김씨는 “저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누군가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곽소영 기자 so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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