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왜 문제인가] <상>‘대표적 독소’ 열람차단 청구권
만일 언론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면 어땠을까. 손해배상이 두려워 사법부의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성폭력 의혹 보도를 할 수 없었더라면 미투 운동이 가능했을까. 최서원씨와 딸 정유라씨가 국정농단 사건의 불을 댕긴 대입 특혜 의혹 기사에 대해 ‘사생활 문제이고 인격권을 침해한다’며 차단을 시도했다면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을지 의문이다.
22일 법조계와 언론계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주 본회의에서 처리를 예고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의혹 보도를 위축시킬 우려가 큰 ‘독소 조항’이 다수 포함됐다는 지적이 거세다. 세 차례 수정을 거쳤는데도 국민의힘·국민의당·정의당은 “언론개혁이 아닌 언론장악 악법”이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한다.
서울신문은 언론법 등의 전문가들 도움을 받아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 및 정정 보도 규정 ▲징벌적 손해배상 및 손해액 기준 규정 ▲허위·조작 보도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 규정 등의 문제를 3회에 걸쳐 짚어 본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중 피해자의 요청으로 인터넷 기사를 내릴 수 있도록 한 ‘열람차단 청구권’ 신설 조항(개정안 17조의2)은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보도 내용이 진실하지 않거나, 사생활·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 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합의가 안 되면 민사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언론사의 부담이 상당하다. 한 번 차단되면 복원 조치에 대한 별도 규정도 없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보도 원문을 남겨둔 채 덧붙이는 방식과 달리 아예 기사를 내리는 차단 조치는 언론 자유를 전면 제한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며 “‘인격권 침해’를 청구 사유로 포함하면 사실상 모든 비판적인 기사가 다 대상이 될 수 있고, 권력자가 언론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남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칫 포털 사이트에 기사 검열 권한이 주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기사 차단 대상에 포함된 포털(인터넷뉴스사업자)이 청구가 들어오면 위험 부담을 피하기 위해 무작정 차단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취지다.
양홍석(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포털은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삭제 요구에 대해서도 진위를 따지기보단 쉽게 임시 조치를 해 준다”면서 “매개자에 대한 청구 처리 과정도 면밀히 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정 보도를 할 때 기사의 크기·시간을 원 보도와 똑같이 하도록 한 규정(15조 6항)에 대해서도 편집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내용만 정정할 땐 원 보도의 2분의1 이상 규모로 하도록 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원고지 20장 기사에서 한 줄 틀렸는데 10장으로 정정 보도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비현실적인 규제”라고 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김가현 기자 kgh528@seoul.co.kr
박상연 기자 sparky@seoul.co.kr
김가현 기자 kgh528@seoul.co.kr
박상연 기자 sparky@seoul.co.kr
2021-08-23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