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서울광장] 상가임대차법 상생 원칙으로 고치자/전경하 논설위원

[서울광장] 상가임대차법 상생 원칙으로 고치자/전경하 논설위원

전경하 기자
전경하 기자
입력 2021-08-17 20:36
업데이트 2021-08-18 01:35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전경하 논설위원
전경하 논설위원
총 4조 2000억원의 소상공인 희망회복자금 지급이 17일 시작됐다. 이 돈으로 자영업자들은 그동안 밀린 임대료를 내거나 생활비가 부족해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 일부를 갚을 것이다. 희망회복자금이 받는 사람 통장을 거쳐 임대인 또는 금융기관으로 흘러간다.

정부는 지난해 ‘착한임대인’ 제도를 도입해 깎아 준 임대료의 50%를 세금에서 빼줬고 올해는 75%로 늘렸다. 착한임대인은 지난해는 깎아 준 임대료의 절반, 올해는 25%를 부담하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착한임대인은 10만명, 임대료를 감면받은 임차인은 18만명이다. 주택임대사업자 통계는 미흡하나마 체계를 갖춰 가고 있지만, 상가임대사업자 통계는 아직이라 착한임대인에 얼마나 참여했는지 모른다. 감면받은 임차인 18만명은 지난해 기준 자영업자(553만명)의 3.3%다. 자기 점포에서 장사하기도 하지만 착한임대인은 소수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임대인 중에는 착한임대인에 동참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부산시가 지난 5월 선정한 ‘1004(천사)임대인’에는 임대료를 1년간 1800만원 내리고 본인은 대출금 이자를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이미희씨가 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이자를 갚지 못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인 사회에서 대출받아 상가에 투자하는 재테크는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 임차인은 다른 나라에 비해 법의 보호를 적게 받는다. 2018년 ‘궁중족발’ 사건으로 상가임대차법이 개정돼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이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됐다. 즉 최대 10년을 보장받지만 프랑스는 최소 9년 이상 임대를 보장한다. 일본의 차지차가법(借地借家法)은 법정갱신제도로 영구 임대가 가능하다. 한 장소에서 수십년, 때론 100년 이상 장사한 노포(老鋪·시니세)가 많은 까닭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난해 7월 상가임대차법을 또 고쳐 기존 3개월이 아니라 6개월치 임대료를 못 내도 계약갱신 사유가 되지 않도록 하고, 임대인이 임대료를 깍아 준 뒤 다시 올릴 때는 5% 상한을 적용받지 않도록 했다. 개정은 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굼뜨고 효과가 미미하다. 캐나다는 임대인이 임대료를 최소 75% 감면하는데 정부가 임대료의 50%를 부담한다. 호주는 임대인이 영업 피해에 비례해 임대료를 깎아 줘야 한다. 임대인 보호도 있다. 미국은 대출금을 못 갚아도 금융기관이 부동산을 압류하지 못하도록 규정했고 캐나다는 대출상환을 미뤘다.

다음달 말에 끝날 예정인 코로나 피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등에 대한 대출 지원 연장 여부를 두고 금융 당국이 고민 중이다. 지난해 4월부터 취해진 조치로 지난 6월 말 현재 대출 만기 연장 192조 4000억원, 원금상환 유예 11조 6000억원, 이자상환 유예 2030억원 등 총 204조원 규모다. 금융권은 모두 또 연장하면 위험성이 크다며 이자상환 유예라도 끝내자는 입장이다. 이자상환 유예를 단계적으로 끝내면서 이자를 조금이라도 깎자.

올 상반기 일반은행(시중·지방·인터넷은행)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1조 3000억원 늘어난 6조 1000억원이다. 대출이 늘면서 이자이익도 늘어서다. 올 초 은행권 임금단체협약에서 성과급, 사기진작책 등을 두고 노사 갈등이 발생했듯이 내년에도 그럴 거다. 성과급은 ‘땅 짚고 헤엄치기’인 이자이익 증가가 아니라 효율적 경영으로 인한 판매관리비 감소, 비이자이익 증가 등이 생길 때 논의돼야 한다. 이자이익에 기반한 성과급을 논하기에 앞서 자영업자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고객과 오랜 신뢰를 쌓아 관계형 금융을 해 왔던 은행이라면 안다. 고객이 세금은 물론 공과금을 제대로 냈는지, 전체 자산은 어느 정도인지를. 고객이 자영업자라면 늘 어려웠는지 아니면 이번 고비만 잘 넘기면 되는지, 임대인이라면 임대업이자상환비율(RTI)이 얼마이고 지원이 필요한지 등을 말이다. 모른다면 지금이라도 시스템을 만들어 고객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

상가임대차법을 그때그때 땜질 보완만 하지 말고 상생 구조가 되도록 고치자. 감염병 등으로 정부가 불가피하게 영업제한·금지를 내리면 임대료를 임대인이 조금이라도 덜 받고 정부와 은행 등이 함께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은행원과 건물주는 우리 사회에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만큼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사람을 돕는 자신감 있는 배려와 시스템이 체계화돼야 한다.
전경하 논설위원 lark3@seoul.co.kr
2021-08-18 31면

많이 본 뉴스

22대 국회에 바라는 것은?
선거 뒤 국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관심 가져야 할 사안은 무엇일까요.
경기 활성화
복지정책 강화
사회 갈등 완화
의료 공백 해결
정치 개혁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