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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범죄를 쫓다

‘한국전 예수’ 에밀 카폰 신부 유해 70년 만에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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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1-03-08 02:42 미국·중남미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중공군 포위 속 탈출 않고 부상병 돌봐
1993년 교황청 ‘하느님의 종’으로 선언
하와이 국립묘지 신원미상 유해 중 발견
참전용사 “생존자 최소 절반 생명 빚져”

한국전쟁에 미군 군종으로 참전했던 에밀 카폰(오른쪽) 신부가 1950년 10월 7일 군용 지프에 담요를 덮은 제단을 만들고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지난 5일(현지시간) 카폰 신부의 유해를 사후 70년 만에 확인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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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에 미군 군종으로 참전했던 에밀 카폰(오른쪽) 신부가 1950년 10월 7일 군용 지프에 담요를 덮은 제단을 만들고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지난 5일(현지시간) 카폰 신부의 유해를 사후 70년 만에 확인했다.
AP 연합뉴스

“날 위해 울지 마시오. 난 내가 항상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갈 것이니. 그곳에 도착하면 당신들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소.”

한국전쟁 당시 자신을 희생해 전쟁터와 포로수용소 등지에서 아군·적군을 가리지 않고 돌본 뒤, 세상을 떠날 때마저 이런 말을 남겼던 ‘한국전의 예수’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가 70년 만에 발견됐다.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지난 5일(현지시간) 카폰의 유해를 70년 만에 하와이주의 국립태평양 묘지에 안장된 신원미상의 참전용사 유해 중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캔자스주의 가난한 농가 태생인 카폰은 1950년 7월 군종 신부로 한국전에 파견됐다. 그가 소속된 미 제1기병사단 제8기병연대 제3대대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원산까지 진격했지만 중공군의 반격으로 평안북도 운산에서 포위됐고, 곧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카폰은 탈출하지 않고 전선에 남아 부상병들을 대피시켰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결국 11월 2일 중공군에게 생포됐지만, 부상병을 사살하려는 중공군의 총구를 밀어내 부상병을 지켰고, 전쟁 중 다친 중공군 장교까지 돌보기도 했다.

이후 끌려간 평안북도 벽동 수용소에서도 카폰은 거동이 불편한 부상병의 옷을 대신 빨았고, 적군 저장고에서 음식과 약을 훔쳐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정작 자신은 이질과 폐렴으로 1951년 5월 23일 35세에 사망했다.

살아남은 병사들이 전쟁 후 카폰에 대한 얘기를 퍼뜨려 1954년 그에 대한 책이 출간됐다. 1993년 로마 교황청은 성인으로 추앙하는 시성 절차의 첫 단계로 카폰 신부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언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3년 카폰에게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주었다.

포로수용소에서 카폰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전쟁 생존자 마이크 도우는 NBC방송에 “당시 생존자 중 최소한 절반은 카폰에게 생명을 빚졌다”고 말했다. CNN은 “시신을 찾을 희망을 버렸던 카폰 일가가 충격을 받았다”며 아직 묘소를 정하지는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2021-03-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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