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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태우고 긁고 두드려… 탐구와 비유 한지의 時間

불에 태우고 긁고 두드려… 탐구와 비유 한지의 時間

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입력 2021-03-03 17:30
업데이트 2021-03-04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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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회화 김민정·유근택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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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작가는 얇은 한지를 불태워 하나의 회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명상과 다름없다고 했다. ‘스컬처’(Sculpture·2020)는 수행과도 같은 지난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갤러리현대 제공
김민정 작가는 얇은 한지를 불태워 하나의 회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명상과 다름없다고 했다. ‘스컬처’(Sculpture·2020)는 수행과도 같은 지난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갤러리현대 제공
전통 회화 재료인 한지의 물성을 독창적으로 실험해 온 중견 작가 2인의 전시가 나란히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한지를 불로 태워 그 조각으로 다양한 형태와 색조의 작품을 완성하는 김민정 작가와 철솔로 한지를 긁고 두드려 서양화의 마티에르 같은 두껍고 거친 질감을 만들어 내는 유근택 작가다. 두 작가 모두 4년 만에 여는 개인전인 데다 공교롭게도 ‘시간’을 전시 주제로 삼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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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작가는 얇은 한지를 불태워 하나의 회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명상과 다름없다고 했다. ‘타임리스’(Timeless·2020)는 수행과도 같은 지난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갤러리현대 제공
김민정 작가는 얇은 한지를 불태워 하나의 회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명상과 다름없다고 했다. ‘타임리스’(Timeless·2020)는 수행과도 같은 지난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갤러리현대 제공
●김민정 작가 새 연작 ‘커플’ 등 30여점 공개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하는 김민정 작가는 오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펼치는 ‘타임리스’(Timeless)에서 대표 연작인 ‘마운틴’, ‘스토리’를 비롯해 새 연작 ‘커플’ 등 30여점을 공개했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1991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그는 서양미술의 원류인 그곳에서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재료인 한지의 가능성을 재발견하고 현대미술의 매체로 실험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어릴 때 부친이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하루 종일 종이를 갖고 놀던 추억과 서예를 배운 경험이 그의 예술적 자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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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작가는 얇은 한지를 불태워 하나의 회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명상과 다름없다고 했다.  갤러리현대 제공
김민정 작가는 얇은 한지를 불태워 하나의 회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명상과 다름없다고 했다.
갤러리현대 제공
●동양화 ‘선’ 탐구… 불과 종이의 협업

한지를 불로 태우는 작업은 동양화의 선(線)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촛불이나 향불에 한지 끝을 살짝 댔다가 엄지와 검지로 재빨리 눌러 끄는 일을 반복해 불규칙한 검은 선을 만들어 낸다. 우연성에 의지하는 ‘종이와 불의 협업’이다. 이렇게 수작업으로 가공한 한지 조각을 길게 잇대고 원형으로 자른 뒤 화면에 콜라주해 수묵화 같은 바다의 잔잔한 물결을 형상화하거나(‘타임리스’ 연작) 우산으로 가득 찬 거리의 서정적인 풍경(‘더 스트리트’ 연작)을 완성한다.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에 대해 작가는 “내겐 상념을 없애는 참선이나 명상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표현했다. “한지가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는 그는 “종이를 섬긴다는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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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 작가 사비나미술관 제공
유근택 작가
사비나미술관 제공
●유근택 작가 신작 56점 ‘시간의 피부’ 展

유근택 작가는 동양화에 미학적 기반을 두면서도 현대인의 일상과 역사적 사건 등에 관한 주제를 자신만의 조형 어법으로 펼치는 화가로 유명하다. 한지에 수묵으로 작업을 이어 온 그는 2017년 한지를 철솔로 긁어 물성을 극대화한 작품을 처음 발표해 호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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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 작가의 작품 ‘어떤 만찬’(2019).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해 유화 같은 두꺼운 질감을 낸 것이 특징이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유근택 작가의 작품 ‘어떤 만찬’(2019).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해 유화 같은 두꺼운 질감을 낸 것이 특징이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시간의 피부’전에선 최근 몇 년간 일어난 사회적, 정치적 격변의 상황을 다룬 신작 56점을 만날 수 있다. 지구촌을 휩쓴 코로나19 사태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초현실적인 현실, 남북정상회담으로 한껏 부풀었던 통일에 대한 희망과 좌절의 시간들을 화폭에 담았다. 출품작 중 ‘시간’ 연작은 지난해 여름 코로나 확산 와중에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 레지던시에 참가하면서 겪었던 불안감을 예술로 승화한 작품이다. 유 작가는 “절대적인 고립감 속에 신문을 태우는 작업을 했는데 재의 흔적이 마치 뼈처럼 보였다”면서 “시간의 영속성과 무한성에 대한 비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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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 작가의 작품 ‘생.장-나’(2020).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해 유화 같은 두꺼운 질감을 낸 것이 특징이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유근택 작가의 작품 ‘생.장-나’(2020).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해 유화 같은 두꺼운 질감을 낸 것이 특징이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철솔 드로잉… 섬세하게 살아난 거친 질감

기법 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꾀했다. 6겹으로 배접한 한지에 물을 뿌려 철솔로 종이의 올을 세운 뒤 호분을 바르고 드로잉하는 과정을 반복해 독특한 요철 질감을 만들어 냈다. 이전에 했던 작업보다 표면에 비비거나 딱딱한 물질로 화면을 긁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거친 질감을 더 섬세하게 살렸다. 4월 18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2021-03-0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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