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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미 칼럼] ‘믿는다’도 다르게 이해하는 저신뢰사회

[김균미 칼럼] ‘믿는다’도 다르게 이해하는 저신뢰사회

김균미 기자
입력 2021-02-17 20:18
업데이트 2021-02-18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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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연일 ‘특단 조치’ 강조
방역 당국에 대한 신뢰 높지만
종합 28위·사회자본 138위
사회적 자본 확충 안 하면
위기극복·개혁에도 영향

김균미 대기자
김균미 대기자
대통령이 연일 ‘특단’의 조치를 강조한다. 16일 국무회의에서 “국토부는 집값 안정에 부처 명운을 걸라”고 강조하는가 하면, “역대급 고용위기”에 전 부처가 ‘비상한 대책을 시급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15일 신임 문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는 스포츠계 폭력을 근절할 ‘특단의 노력’을 당부했다. 작년 코로나 위기 이후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와 국무회의 때마다 방역, 부동산, 고용 대책과 관련해 ‘특단’이라는 표현이 거의 빠진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더이상 ‘특단’이 아니라 ‘또 특단’으로 들린다. 정부가 내놓을 대책에 대한 기대도, 신뢰도 떨어진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가능하면 사건·사고에 휘말리지 않고 큰 병에 걸리지 않길 바란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사법 당국이 자신을 지켜 줄 마지막 보루이길 기대하지만, 실제 사법 당국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공정’과 ‘민생’에 방점을 둔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을 지지하는 이유다. 자발적인 개혁에는 물론 한계가 있지만 지금처럼 거대 여당에서 몰아붙이는 검찰 개혁, 사법부 개혁, 경제 개혁에 이은 언론 개혁은 부작용이 따르고 그렇지 않아도 낮은 신뢰도를 더 추락시키고 있다.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작동은 하는지 심히 걱정된다.

선출된 권력임을 강조하며 개혁을 명분으로 내건 여당을 포함한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그럼 높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8년 4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32.3%로 낮다. 민망하게도 정치계가 6.9%로 꼴찌다. 여당이 개혁 대상으로 지목한 언론(35.5%), 법조(34.0%), 공직사회(37.2%)도 낮지만 평균보다는 높다. 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17.9%에 불과하다. 여북하면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1995년 펴낸 책 ‘트러스트’에서 한국을 ‘저(低)신뢰 사회´로 표현한 것이 아직 통할까. 코로나 위기 속에 방역 당국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높은데 무슨 소리냐고 반박할 수 있지만, 방역을 빼고는 전반적인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큰 편이다.

후쿠야마의 분석이 유효하다는 지표는 많다.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가 매년 11월 공신력 있는 국제지표와 여론조사 등을 토대로 발표하는 ‘레가툼 번영지수’에서 한국은 2020년 교육과 보건, 경제의 질, 개인의 자유 등을 종합 평가한 결과 167개국 중 28위로 상위권이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 항목은 139위로 최하위권이다. 편차가 커도 너무 심하다.

사회적 자본은 개인 간 신뢰와 국가 기관과 제도에 대한 신뢰, 사회규범과 시민의 참여 정도로 사회 안정과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무형 자산이다.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 중에서 사법 시스템과 법원에 대한 신뢰가 164위, 군에 대한 신뢰가 147위, 정부에 대한 신뢰가 123위,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111위로 유독 낮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는 2010년 25위에서 급락했다.

인적·물적 자본에 비해 비정상적일 정도로 낮은 한국의 사회적 자본 확충 논의는 2000년대 들어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에는 심지어 신뢰, 믿음, 협력 등을 통해 사회통합과 발전을 추구하는 내용의 ‘사회적자본증진법’까지 발의됐다. 대한상공회의소도 같은 해 ‘한국의 사회적 자본 축적 실태와 대응과제 연구´ 보고서까지 내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적폐청산과 권력기관 개혁, 코로나 위기까지 겹치면서 사회적 자본 확충 논의는 사그라졌다.

편 가르기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내 편이 하면 선, 반대 편이 하면 적폐로 낙인찍기 일쑤다. 이런 마당에 신뢰가 뿌리내릴 틈이 어디 있나. 여야가 따로 없지만, 특히 슈퍼 여당은 통합과 상생 정치를 말로만 한다. 불신과 분열의 원인은 모두 남 탓이란다. 사회의 신뢰 자본을 이렇게 망가뜨리고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지 걱정스럽다.

코로나 위기에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자본을 거론하는 것이 한가하게 들릴 수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개인 간,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야말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신뢰 자본을 쌓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설득하고 솔직하게 소통해야 한다. 이때 소통은 당연히 양방향이어야 한다. ‘믿는다’는 말에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지만 신뢰가 부족하면 책임지라는 말로만 들려 불신을 키울 수 있다. 국민 신뢰도가 가장 낮은 정치권부터 사회적 자본을 확충해야 개혁 명분도 산다.
2021-02-1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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