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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석의 외교 통일 수첩] 한미 진보 정부 들어서면 ‘케미’ 선보일까

[박기석의 외교 통일 수첩] 한미 진보 정부 들어서면 ‘케미’ 선보일까

박기석 기자
박기석 기자
입력 2020-10-31 00:03
업데이트 2020-11-0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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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부의 이념 성향 같은 경우는 87년 이후 4차례
보수 김영삼-진보 클린턴 때는 북미 협상으로 갈등
김대중 취임하자 클린턴과 대북 정책 협력 최고조
김대중, 아들 부시의 ‘디스맨’ 결례 등 관계 악화
동맹 중시 바이든, 트럼프와 달리 방위비 압박 자제
대북 정책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엇박자 낼 수도

지난 19일(현지시간) CBS방송의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AP
지난 19일(현지시간) CBS방송의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AP
다음 달 3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전국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고 있다. 민주당이 정권을 탈환한다면 한미 양국에는 클린턴 정부와 김대중 정부 이후 20년 만에 같은 진보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바이든 정부가 이념적으로 가까운 문재인 정부와 양국 현안과 관련해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반면, 문재인 정부가 주력하는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해선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정부에 비해 완고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 양국이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에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약 32년 동안 한미 양국에 동일 이념의 정부가 집권한 경우는 다섯 차례, 기간은 총 8년 11개월에 불과하다. 1988년 2월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은 같은 보수 성향의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 1989년 1월부터는 같은 당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1993년 1월 퇴임할 때까지 호흡을 맞췄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취임해 같은 진보 성향의 민주당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짝을 이뤘으나 2001년 1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국 진보 정부-미국 보수 정부의 구도로 바뀌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2월 취임함에 따라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보수-보수 정부 구도를 만들어냈으나 2009년 1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며 한미 정부 성향이 엇갈리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기간 오바마 대통령을 상대하다 2016년 11월 미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같은 보수 정부를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 국정농단 사태가 시작되고 이듬해 3월 박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한미 보수 정부가 협력할 기회는 사실상 없었다.

한미 정부의 이념 성향이 양국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시기는 김영삼-클린턴, 김대중-클린턴, 김대중-아들 부시 시기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 1월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한국을 택할 만큼 한국에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클린턴 정부가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반대하는 김영삼 정부를 배제함에 따라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2월 취임하자 상황은 전변했다. 클린턴 정부는 임기 말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반영해 북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 해제를 교환하는 ‘페리 프로세스’를 가동하면서 한미는 남북·북미 관계에서 보조를 맞췄다. 1999년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 북미가 양국 관계 개선과 정상회담 개최 등을 골자로 한 공동 코뮤니케에 합의하면서 김대중-클린턴의 대북정책 협력은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아들 부시 대통령이 2001년 1월 취임한 후 북미 정상회담을 무산시키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등 대북 강경 노선을 택하면서 김대중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부시 대통령이 2001년 워싱턴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 대통령을 ‘디스맨’으로 부르며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것은 두 정부의 불편한 관계를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가 집권한다면 한미가 김대중-클린턴 시기의 ‘케미스트리’를 보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후보와 문재인 대통령 모두 다자주의를 지지하기에 한미가 자유무역, 기후변화 등에서 협력을 확대할 기회가 많아질 수 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압박하고 주한미군 감축을 연계시킨 것과 달리,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후보는 분담금의 과도한 인상을 지양하고 한미 동맹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을 보인다. 바이든 후보는 30일 연합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대통령으로서 나는 우리의 군대를 철수하겠다는 무모한 협박으로 한국을 갈취하기보다는, 동아시아와 그 이상의 지역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국과 함께 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정부가 대북 정책에선 이견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남은 임기 1년여 간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서 성과를 내고자 하지만, 바이든 후보는 실무협상에 기반한 철저한 비핵화 협상을 선호하기에 북미 대화의 재개와 진전을 서두르지 않을 수 있다. 대북 정책에서는 오히려 정상 간 톱다운 방식으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 북한과 담판을 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과 부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바이든 후보는 기고문에서 “나는 원칙에 입각한 외교에 관여하고 비핵화한 북한과 통일된 한반도를 향해 계속 나아갈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과는 다른 기조를 취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클린턴 정부는 핵 없는 북한을 상대했고, 바이든 정부는 핵을 완성한 북한을 상대해야 하기에 같은 정당이더라도 대북 정책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며 “아울러 민주당이 오히려 민주주의 확산과 인권 존중을 중시하며 독재 정권의 교체까지 고려하는 외교 노선을 갖고 있기에 문재인 정부와 갈등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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