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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재택근무, 그까짓 것?/황금주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열린세상] 재택근무, 그까짓 것?/황금주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입력 2020-09-17 17:24
업데이트 2020-09-18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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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주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황금주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꾸었고, 비대면 강의는 그중 하나였다. 비대면 강의는 내겐 재택근무이기도 하다. 처음 해 보는 비대면 강의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강의를 녹음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어떤 교수는 이번 기회에 온 국민이 열망하는 인기 유튜버로 등극하겠다며 야심 차게 장비까지 구매했다. 유튜브를 몇 번 찾아본 결과 인기 유튜버들의 콘텐츠, 말솜씨와 개인기에 기가 죽은 나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학교에서 제공해 주는 영상녹화도 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텅 빈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있는 척 연기하는 부끄러움은 상상만 해도 나를 소름 돋게 했다. 학생수가 60명이 넘는 경영학부 강의에서 화상 강의는 그림의 떡이다.

그런데 녹음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개와 고양이의 차이는, 고양이는 사생활이 있고 개는 사생활이 없다는 점이다. 방해를 피하려고 새벽에 주로 강의를 녹음하는데, 사생활 따위를 허용해 주지 않는 개들을 옆에 끼고 녹음을 하다 보면, 코를 곤다. 개의 코 고는 소리를 덮고자 내 목소리는 높아지고, 결국은 녹음 중에 학생들에게 이 사정을 고백하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작은 소음도 방해가 됐다.

비대면 강의 초기에 교수들은 주로 이런 대화를 했다. “내가 이렇게 말을 못하는 인간일 줄 몰랐다, 나는 문법 파괴자더라.” 녹음한 내용을 재생해 듣고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교수들은 재녹음을 거듭하다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비대면 강의 준비는 두 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고, 녹음하다 집중력을 잃고 버벅거리기라도 하면 10분이 넘는 강의를 통째로 날려버리기 일쑤였다. 표정과 보디랭귀지로 학생들의 이해도를 판단할 수 없으니, 모든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다 진도는 느려지고 초조와 좌절감이 밀려왔다. 화려한 인터넷 강의에 익숙한 학생들은 내 강의 녹음이 한없이 초라하고 지겨울 텐데, 토끼탈이라도 뒤집어쓰고 동영상 강의를 찍어야 할까. 외롭고 우울해졌다.

이번 학기에 시작한 대학원 화상 강의는 눈앞에 보이고 들리니 그나마 나았지만, 대면 강의와는 비교 불가다.

요즘 재택근무가 의외로 효율적이라고 한다. 화상회의가 쓸데없는 잡담을 줄여 줘서 시간 낭비 없이 집중적인 회의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잡담은 수평구조에서 관계를 돈독히 하는 역할을 하지만, 상사가 일방적으로 떠드는 이야기에 적절한 리액션을 해 줘야 하는 수직적 관계에서 잡담은 부하 직원들이 피하고 싶은 시간일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재택근무는 삶의 질과 업무 성과를 향상한다. 기업은 사무실 공간을 줄이는 등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코로나 위기와 같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재택근무의 단점도 만만치 않다. 많은 방해요소가 있고, 몰입은 저하되며, 모니터를 통한 화상회의는 대면 회의보다 피로감을 높인다. 팀 메신저 방에서 그룹 대화가 진행되면 정보 과부하가 생긴다. 메신저 방 대화에서는 문장부호 하나도 미묘한 감정이 전달돼 해석에 여지를 남긴다. 화상회의조차 익숙지 않은 어조 때문에 오해와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단점은 소외와 단절감이다. 국제노동기구와 미국 상공회의소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원 간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직원 간 소통은 업무에만 집중돼서는 안 되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 간 소통은 정서 관계를 형성해 소외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화상회의에서 생일 축하 등으로 단절감을 해소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관리자는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감성 리더십을 발휘해 직원들의 감정까지 세심히 살펴야 하고, 이를 위해 개별 직원과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그런데 재택근무로 잡담이 줄어 효율적이라고 하니, 노파심에 걱정이 앞선다. 재택근무가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소통으로 정서적 관계와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다. 재택근무에서는 업무를 위한 소통뿐만 아니라 사적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사적 소통으로 알려진 개인사는 공격의 무기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조심스럽다. 사적 소통을 촉진하고 부작용 없이 관리하는 것도 조직의 능력이다.
2020-09-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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