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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상호의존성의 무기화’와 ‘탈동조화’, 한일 분쟁의 승자는?/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

[열린세상] ‘상호의존성의 무기화’와 ‘탈동조화’, 한일 분쟁의 승자는?/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

입력 2020-08-04 17:36
업데이트 2020-08-05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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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
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
일본이 한국에 수출규제를 가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8월 4일 0시부터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 이행의 일환으로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 합작사 PNR에 대한 주식 압류명령 효력이 시작됐다. 일본의 수출규제 의도가 대법원 판결의 이행 저지였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에 한국에서는 일본 정부가 이후 또 어떤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상호의존성의 무기화’ 개념을 설파한 헨리 패럴과 에이브러햄 뉴먼은 지난해 8월 1일자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도 그 일례라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이에 맞선 한국의 대응 전략은 ‘탈동조화’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지난 1년간의 한일 무역 분쟁은 ‘상호의존성의 무기화’ 대 ‘탈동조화’의 맞대결로 간주할 수 있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자. 상호의존성이 상대만 겨누는 무기가 될 수 있을까? 탈동조화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그럼 다시 질문을 던져 보자.

한일 양국은 그간 파국적인 치킨게임을 했을까? 글쎄다. 일본 정부는 ‘상호의존성의 무기화’를 강행하지 않았다. 이는 아직 압류자산 현금화가 실행 전이기도 하나, 상호의존성이란 양날의 칼이라 무기화가 어렵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교란도 감당할 엄두가 안 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도 일본이 부적절한 수출 관리를 문제 삼자 강력 반발했으나 결국 대외무역법 개정, 관련 조직의 확대 개편 등 일본 요구를 수용했다. 그뿐인가. 양국은 코로나 와중에도 3월까지 대화를 이어 갔다. 이처럼 양국은 정면충돌 시의 공멸을 잘 알기에 ‘밀당’하며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우리가 ‘화이트국가’ 배제 영향을 실감하기 힘들었던 연유다.

탈일본화는 곧 탈일본기업화일까? 글쎄다. 현재까지의 탈일본화 현황을 생산 거점별로 유형화하면 국산화, 외국인 투자 유치, 수입선 다각화가 주를 이루나 후자 2개 유형의 생산 주체는 일본 기업이 주를 이룬다. 즉 ‘탈일본화≠탈일본기업화’라는 흥미진진한 특징이 포착된다. 그것이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탈일본화의 요체는 국산화가 아니라 공급 다각화다. 기술 주기가 빠르고 시장 수요가 제한된 품목의 탈일본화에 장기 거래 관계의 일본 기업을 활용한 전략은 일본 입장에선 뼈아픈, 그러나 한국에는 영리한 선택지였다. 일본에 더 쓰라린 지점은 ‘탈일본화=탈일본기업화’ 유형일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자국 기업의 글로벌 독과점 시장에 균열을 내 듀폰이나 램리서치, 인프리아와 같은 미국 기업이 진입할 틈을 만들고 말았다.

그럼 한국의 승리일까? 글쎄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고사 직전의 20년 숙원 사업이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정책을 기사회생시킨 ‘위장된 축복’이다. 새옹지마가 따로 없다. 대일 전략으로 출발한 탈일본화 정책은 코로나19 발발 후 다른 나라보다 발 빠르게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에 나설 수 있는 예행연습이 됐다. 한국이 그런 ‘복덩이’를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의 무대로 소환시킨 것은 뭘 의미할까?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고조된 오늘날 탈일본화는 지속하되 공급 다각화 차원에서 대일 수입의 불확실성이라도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탈동조화는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을 낳는다. 그러니 상호의존성의 무기화와 탈동조화의 맞대결 승자는 전자도 후자도 아닌 상호의존성 자체다.

일본은 수출규제로 강제동원 문제 해결에 도움을 얻었을까? 글쎄다. 오히려 사태는 꼬이고 부메랑만 자초했다. 지난 20여년간 양국 관계는 한국의 대일 의존에서 상호의존 관계로 변용됐으나 양국 모두 자각하지 못하다 이번에 호되게 상호의존성의 경제학을 학습했다.

이제 양국이 해야 할 일은 더 날카로운 창과 더 두꺼운 방패를 찾아 상호 확증 파괴의 모순에 직면할 게 아니라 정경분리 원칙으로 돌아가 수출규제 철회와 WTO 제소 취하를 선언하고 대화의 길에 나서는 것이다. 지구촌의 코로나 팬데믹 희생자가 70만명에 이르고 미중 갈등은 악화일로에다 최악의 경제침체로 허덕이는 지금 두 나라가 해야 할 일은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협력과 화해다. 원칙은 때론 진부할 만큼 명쾌하고 단순하다.
2020-08-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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