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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료 받는 KBS, ‘돈 안 되는’ 어린이합창단 강제 해단이 경영 혁신? [강주리 기자의 K파일]

수신료 받는 KBS, ‘돈 안 되는’ 어린이합창단 강제 해단이 경영 혁신? [강주리 기자의 K파일]

강주리 기자
강주리 기자
입력 2020-07-09 16:14
업데이트 2020-07-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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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재정난 이유로 70년 넘는 역사와 상징성 띤 부산·전주·울산·청주·제주 등 전국 5개 KBS어린이합창단 올해 동시 해단 결정

‘경제 논리로 어린이합창단 해단 말아달라’
KBS시청자청원·청와대 국민청원 잇따라
“국민이 내는 수신료 받는 KBS, 최선이냐”
작년 ‘성악가 조수미’ 나온 서울부터 해단
KBS어린이합창단 해단을 막아주세요
KBS어린이합창단 해단을 막아주세요  KBS청주어린이합창단의 공연 모습. KBS는 지난 1일 재정난을 이유로 자사 소속 전국 5개 KBS어린이합창단을 올해 말까지 동시 해단하겠다고 밝혔다.
 독자 제공
KBS어린이합창단 해단을 막아주세요
KBS어린이합창단 해단을 막아주세요  KBS는 지난 1일 재정난을 이유로 자사 소속 전국 5개 KBS어린이합창단을 올해 말까지 동시 해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경제 논리로 어린이합창단을 해단하지 말아달라는 청원들이 잇따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KBS어린이합창단 해단을 막아주세요’ 청원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국민들로부터 6000억원대의 수신료를 징수하는 KBS가 지난달 재정난을 이유로 7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자사 소속 어린이합창단 5곳에 대해 해단을 통보했다.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등 유명인을 발굴한 KBS 서울어린이합창단을 지난해 없애버린데 이어 부산·전주·울산·청주·제주 등 지역 방송국에서 활동 중인 어린이합창단 5개마저도 올해 말까지만 운영하라며 해단을 선언했다. 이에 KBS 시청자권익센터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경제 논리로 어린이 합창단을 폐지하지 말아달라’는 청원이 잇따랐다.

KBS “예산 투입 대비 수익 나지 않는다”
청원인 “KBS서 재정 독립한대도 없애”

방만경영·콘텐츠 경쟁력 하락 지적 속
6500억 수신료 받고도 1000억 적자
KBS “수신료 현실화 추진” 인상 예고


한 청원인은 지난달 29일 ‘KBS어린이합창단 해단을 막아주세요’란 제목으로 KBS 조치의 부당함에 대해 호소했다. 청원 동의는 9일 오후 3시 현재 2000명에 이르렀다. 청원인은 지난 1일 KBS가 경영혁신 선언을 한 날 지역방송총국으로부터 어린이합창단 해단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양승동 KBS 사장은 당시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적자를 막을 수 없다”며 수신료 현실화 추진과 경영 혁신의 일환으로 어린이합창단을 정조준했다. 그동안 방만경영과 콘텐츠 경쟁력 부실 평가를 받아왔던 KBS는 6500억원(2017년 기준)에 달하는 수신료를 받으면서도 연간 1000억원대의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양 사장은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이 되려면 수신료 비중이 전체 재원의 70%(현재 45%) 이상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KBS는 올 하반기 수신료 현실화 추진단을 출범한다.

KBS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어린이합창단은 예산 투입 대비 수익이나 성과가 나지 않아 효율적인 회사 조직 운용에 맞지 않은 면이 있다”며 “한정된 자원을 양질의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에 집중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 마디로 ‘돈’이 안 된다는 판단이다.

청원인은 “경제 논리에 따른 해단 조치에 지역 학부모들이 힘을 모아 재정적으로 독립하는 조건으로 합창단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그간 재정적으로 KBS방송국에 의존하지 않았는데 재정 이유로 ‘해단’ 조치를 내리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청원인은 “공공 어린이 예술단체의 명맥을 유지하고 합창을 통해 어린이를 위한 노래를 부르며 동요를 지켜내고 보급하던 방송국의 어린이합창단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다”면서 “인기가 없고 돈이 되지 않더라도 어린이를 위한 무대와 어린이를 위한 동요를 편성하는 게 공영방송의 몫이 아니냐”며 해단 결정 철회를 촉구했다.

“타사의 트로트 프로그램 인기에 유사 프로그램을 공격적으로 편성하면서도 정작 어린이를 위한 합창·동요는 없애버리는 것이 국민이 내는 수신료로 운영하는 KBS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느냐”고도 했다.
KBS어린이합창단 해단을 막아주세요
KBS어린이합창단 해단을 막아주세요 KBS시청자권익센터에 올라온 KBS어린이합창단 해단 반대 청원들. KBS는 지난 1일 재정난을 이유로 자사 소속 전국 5개 KBS어린이합창단을 올해 말까지 동시 해단하겠다고 밝혔다.
 KBS 홈페이지 캡처.
“타사 트로트 프로그램은 공격 편성 KBS,
정작 어린이 위한 동요·합창은 없애느냐”

단원 선발 6개월 만에 해단 아이들 상처
합창단 지원 예산 방송사 평균 연 1500만
일부 지역은 학부모 자비 부담…지원 끊겨

KBS 직원 절반 이상 억대 연봉자 대조

청원인은 지난해 12월 신입단원을 선발해 단복을 맞추고도 코로나19 속에 연습조차 못하며 무대 설 날을 기다렸던 아이들에게 합창단 해단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최종 해단될 경우 아이들이 입게 될 마음의 상처는 불가피해 보인다. 한 관계자는 “KBS전주 방송국은 어린이 합창단에게 당장 해단과 함께 장소(연습실)를 비워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KBS 어린이합창단은 ‘건전한 동요를 통해 어린이들의 정서를 함양한다’는 목표로 1947년 창단됐다. 그동안 동요 발표회나 창작동요 대회를 열어 동요를 보급하고 지역의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 지역 문화예술에도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국회 등에 따르면 지역 방송국마다 차이는 있지만 어린이합창단에 지원하는 KBS예산은 인건비, 제작비를 모두 합해 연간 평균 1500만원 정도다. 그마저도 올해부터 KBS부산은 전액 삭감됐다. KBS 직원(5300여명) 중 1억원 이상 억대 연봉자가 2018년 기준 51.9%에 달하는 것과 대조된다.

서울어린이합창단을 해체시킨 KBS는 “지역KBS 중에 예산을 배정하는 곳들(청주·울산)이 있는데 이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경고했다. 해단을 종용하는 상황에서 어린이합창단에 대한 예산 지원을 일제히 끊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KBS어린이합창단 해단을 막아주세요
KBS어린이합창단 해단을 막아주세요  KBS부산어린이합창단(현 KBS부산소년소녀합창단)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1주년 기념 부산 평화콘서트’ 지난해 공연 모습. KBS는 지난 1일 재정난을 이유로 자사 소속 전국 5개 KBS어린이합창단을 올해 말까지 동시 해단하겠다고 밝혔다.
 KBS부산어린이합창단 제공
 
프랑스, 2018년부터 합창 정규과목 반영
日NHK, 전역에 어린이합창단 투자 확대

“합창, 정서교육과 사회성·자신감 향상 도움”

28년째 KBS 부산어린이합창단에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김태호 지휘자는 “학부모들이 자비를 모아 운영하겠다는데도 본사에서 일제히 합창단을 없애라고 한다”면서 “인성과 정서 교육이 중요한 시기에 아이들이 화음을 만들어 가며 참을성과 협동심, 배려심, 성취감을 배울 수 있는 합창 교육의 장을 없애는 것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프랑스는 아이 때의 합창 교육이 정서 교육과 사회성, 자신감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2018년부터 초중고 정규 과정에 합창 수업을 반영했다. 이를 위해 예산 250억원을 배정했다.

일본 공영방송인 NHK는 후쿠오카, 나가사키 등 일본 전역에 어린이합창단을 신설하며 투자를 늘리고 있다.

반면 부산을 포함해 KBS어린이합창단원들이 출연하던 동요 프로그램은 폐지된 지 오래고 KBS의 지원 냉대 속에 동요대회조차 열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복수 관계자들은 전했다.
KBS어린이합창단 해단하지 말아주세요
KBS어린이합창단 해단하지 말아주세요 KBS부산어린이합창단(현 KBS부산소년소녀합창단) 공연 모습. KBS는 지난 1일 재정난을 이유로 자사 소속 전국 5개 KBS어린이합창단을 올해 말까지 동시 해단하겠다고 밝혔다.
KBS부산어린이합창단 제공

“공영방송, 당장 성과 없어도 미래세대 투자를”
“동요·합창 없애는 건 문화적 무지와 힘의 왜곡”

“동요·합창, 어린이 예술영역
경제 논리 접근, 동심파괴 행위”
“합창교육, 공공기관이 더 나서야지
돈만 좇는 상업적 논리 개입 안돼”

KBS 내부경영에 밝은 한 미디어 전문가는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은 당장 성과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동요·합창 등 어린이들의 예술영역을 경제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동심 파괴 행위”라고 지적했다.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은 “선진 각국은 어린이들을 미래 자산으로 그 꿈을 육성하는 데 보호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어린이합창단 환경을 공영방송 KBS가 나서서 뿌리째 없애버리겠다니 이는 문화적 무지와 힘의 왜곡이며 대한민국 미래의 자살골”이라고 비판했다. 아이들 프로그램이라고 만만하게 보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순수한 가치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탁 회장은 또 “일부 지역은 학부모들이 자비를 거둬 운영하는 등 KBS 예산이 거의 안 들어간다”면서 “KBS어린이합창단은 73년의 역사만큼 상징성이 크고 그 자긍심이 아이들에게 꿈을 준다. 게임에 빠지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상황 속에 사회성과 자신감을 길어주는 합창 교육은 공공성이 높은 기관들이 더 나서서 해줘야지 돈만 좇는 상업적 논리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기차를 타고’ ‘비오는 둑길’ 등 주옥 같은 동요들을 작곡했던 김태호 지휘자는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는 마음의 고향이고 사람을 순수하게 만든다”면서 “가정폭력 등 요즘 충격적 사건들이 많은데 인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서로 조화를 이루는 합창과 같은 예술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으면 마음이 순화되고 이타심이 생겨 극단적인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데 그런 정서를 함양할 소중한 기회와 경험을 공영방송 KBS가 아이들에게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KBS어린이합창단 해단을 막아주세요
KBS어린이합창단 해단을 막아주세요  KBS부산어린이합창단(현 KBS부산소년소녀합창단) 공연 모습. KBS는 지난 1일 재정난을 이유로 자사 소속 전국 5개 KBS어린이합창단을 올해 말까지 동시 해단하겠다고 밝혔다.
 KBS부산어린이합창단 제공
 
강주리 기자의 K파일은 강주리 기자의 이니셜 ‘K’와 대한민국의 ‘K’에서 따온 것으로 국내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취재파일입니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사까지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온라인 서울신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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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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