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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폭행남 구속 기각…피해자측 “가해자만 보호하는 법”

서울역 폭행남 구속 기각…피해자측 “가해자만 보호하는 법”

오달란 기자
오달란 기자
입력 2020-06-05 10:25
업데이트 2020-06-0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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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처음 본 여성을 폭행하고 달아났다가 검거된 피의자 이모씨가 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용산경찰서 유치장을 나서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서울역에서 처음 본 여성을 폭행하고 달아났다가 검거된 피의자 이모씨가 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용산경찰서 유치장을 나서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피해자 보호하는 법은 어디에 있나”
서울역에서 지나가는 여성을 밀치고 때린 뒤 달아났던 30대 남성이 구속을 면하자, 피해자 가족은 법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보호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피해자 가족은 지난 4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잠도 못 자고 불안에 떨며 일상이 파괴되었는데 가해자의 수면권과 주거의 평온을 보장해주는 법이라니 대단하다”며 “제 동생과 추가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법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상해 혐의를 받는 이모(32)씨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공항철도 서울역 1층에서 처음 보는 30대 여성을 어깨로 밀치고 얼굴에 주먹질해 왼쪽 광대뼈가 함몰되는 등의 상처를 입히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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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영장실질심사 앞둔 서울역 묻지마 폭행 피의자
구속영장실질심사 앞둔 서울역 묻지마 폭행 피의자 4일 오전 서울역에서 처음 보는 여성을 폭행하고 달아난 이모(32)씨가 용산경찰서에서 구속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앞두고 추가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철도경찰대로 이동하고 있다. 서울지방철도경찰대는 이씨에게 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020.6.4 연합뉴스
법원 “체포영장 없는 체포는 헌법 위반”
철도특별사법경찰대는 지난 2일 서울 용산경찰서 경찰관들과 함께 이씨를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긴급체포한 뒤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체포 과정이 적법하지 못했다고 봤다. 김 부장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이례적으로 1174자(원고지 6매 분량)에 달하는 상세한 기각 사유를 밝혔다.

법원은 헌법 제12조 1항과 3항에 따라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모든 국민이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으며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헌법 제 16조를 들며 강제수사에서 적법한 절차와 영장주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를 체포한 경찰이 이런 헌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얘기다.
법원 “범죄 혐의자여도 집은 그의 성채”
법원은 이번 사안이 영장주의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 경우인 긴급체포 요건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체포 당시 피의자 이씨의 주변의 CC(폐쇄회로)TV 영상과 주민 탐문을 통해 피의자의 성명, 주거지, 휴대전화 번호를 파악한 다음 그의 주거지를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며 이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씨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강제로 출입문을 개방해 주거지에 들어가 침대에서 자던 이씨를 긴급체포했다.

체포 상황에 대해 법원은 피의자의 범죄혐의가 상당하고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신원과 주거지, 전화번호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점 ▲주거지에서 잠을 자고 있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한 상황도 아니었던 점 등을 볼 때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라고 할 것인데 비록 범죄혐의자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음에 예외를 둘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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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영장실질심사 앞둔 서울역 묻지마 폭행 피의자
구속영장실질심사 앞둔 서울역 묻지마 폭행 피의자 4일 오전 서울역에서 처음 보는 여성을 폭행하고 달아난 이모(32)씨가 용산경찰서에서 구속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앞두고 추가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철도경찰대로 이동하고 있다. 서울지방철도경찰대는 이씨에게 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020.6.4 연합뉴스
피해자 가족 “최근 본 문장 중 가장 황당”
이런 법원의 판단에 피해자 가족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가족 측은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인데 범죄 혐의자라 할지라도 주거의 평온 보호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문장은 최근 본 것 중에 가장 황당하다”며 “덕분에 이제 피해를 고발했던 우리들은 두려움에 떨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를 체포한 경찰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피해자 가족은 “철도경찰은 체포과정을 몰라서 이런 실수를 한 건가. 체포를 한 두 번 하는 게 아닐 텐데…대체 어떻게 이걸 받아들여야 하나. 의문투성이라 화낼 힘도 안 난다”고 했다.

경찰 “피의자 인권보호 강화하는 추세”
가족 측은 5일에도 “분노가 더욱더 차오른다. 기각의 이유도 황당하다”며 “추가 피해자가 지금 몇 명인지 모르시나. 범죄를 막기 위해 두려움을 뒤로 하고 목소리를 낸 사람이 몇 명인지 모르시나. 한국사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라고 한탄했다.

경찰은 이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에 당황한 분위기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경찰관이 긴급체포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고 피의자를 체포하더라도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며 “최근 판례가 피의자 인권보호를 강화하는 추세여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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