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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범죄를 쫓다

‘흑인 사망‘ 도운 경관 셋 출두, 소환된 라오스 몽족 슬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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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0-06-05 17:56 usa 목록 확대 축소 인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책임 있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전직 경찰관 4명이 오렌지색 미결수 복을 입은 채 머그 촬영에 임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데릭 쇼빈, 투 타오, 토머스 레인, J 알렉산더 쿠엉. 미네소타주 교정국 제공 로이터 연합뉴스

▲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책임 있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전직 경찰관 4명이 오렌지색 미결수 복을 입은 채 머그 촬영에 임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데릭 쇼빈, 투 타오, 토머스 레인, J 알렉산더 쿠엉.
미네소타주 교정국 제공 로이터 연합뉴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의 사망을 불러온 백인 경관 데릭 쇼빈(44)을 제지하지 않고 돕거나 제지하려던 시민들의 접근을 막은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전직 경찰관 셋이 4일(이하 현지시간) 처음으로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쇼빈은 오는 8일 처음 법정에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미니애폴리스 법정에 오렌지색 미결수 복을 입고 출두해 판사로부터 5분 정도씩 예비심문을 받은 전직 경찰관은 알렉산더 쿠엉(26), 토머스 레인(37), 투 타오(34)로 지난달 25일 플로이드를 위조지폐 혐의로 체포하는 과정에 그의 목을 무릎으로 찍어 눌러 사망에 이르게 한 쇼빈은 기존 3급 살인에 더해 2급 살인 혐의가 추가됐고, 이들 세 전직 경관들은 2급 살인 공모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킹과 레인은 당시 수갑이 뒤로 채워진 채 바닥에 엎드린 플로이드의 등과 발을 누르고 있었고, 타오는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법정에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이들의 유죄가 확정되면 최대 40년의 징역형을 언도 받을 수 있는데 재판부는 세 명에게 모두 100만 달러(약 12억 1950만원)의 보석금을 책정했다. 이 금액을 완납하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다. 다만 개인이 소지한 무기를 반납하는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보석금은 75만 달러로 내려갈 수 있다.

레인의 변호인 얼 그레이는 “레인이 명령을 따르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 그는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데릭 쇼빈이 무릎으로 눌러 꼼짝 못하게 만들었을 때 라오스 몽족 혈통인 투 타오는 제지하려는 시민들의 접근을 막는 역할을 해 2급 살인 공모 혐의로 기소됐다. 페이스북 동영상 캡처

▲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데릭 쇼빈이 무릎으로 눌러 꼼짝 못하게 만들었을 때 라오스 몽족 혈통인 투 타오는 제지하려는 시민들의 접근을 막는 역할을 해 2급 살인 공모 혐의로 기소됐다.
페이스북 동영상 캡처

특히 라오스 난민 몽족 혈통인 타오가 범행에 가담한 것은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같은 소수 인종 출신으로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다. 타오는 2017년에도 라마르 퍼거슨이란 흑인 남성을 검문하는 과정에 완력을 행사해 2만 5000달러의 합의금을 주고 소송을 매듭지은 전력이 있다.

또 쇼빈의 범행이 알려진 뒤 곧바로 이혼 소송 신청을 해 눈길을 끌었던 아내 켈리(46)의 남동생이 타오인 것으로 일부 언론에 잘못 보도되기도 했다. 켈리는 몽족 난민 출신으로 1980년 미국으로 건너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실제로 켈리의 남동생은 미니애폴리스의 강 건너편에 자리해 트윈시티로 불리는 세인트폴에서 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뜻밖에 몽족의 슬픈 역사가 소환됐다. 몽족은 베트남과 라오스, 중국 윈난성 산악지대에 2000년 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 온 400만~500만명의 소수민족으로 베트남 전쟁 때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공산 세력의 남하를 막으려는 미국에게 이용만 당하고 종전 후에는 보복의 애꿎은 대상이 됐다. 베트남군과 라오스군에 목숨을 잃은 사람만 10만명 이상이며, 30만명이 넘는 난민이 태국 난민수용소에 수용됐다. 켈리도 세 살 때 태국 난민수용소에서 생활하다 1980년 미국이 난민법을 제정해 몽족 난민을 받아들이자 이때 미국으로 건너왔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미네소타주와 위스콘신주가 이들 난민을 받아들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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