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을 믿고 하는 정치

입력 : ㅣ 수정 : 2020-04-09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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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관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 허성관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유학 경전 중 하나인 대학(大學)은 바른 정치를 설파한 책이다. 이 책 첫머리에 ‘바른 정치는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한문으로 ‘재신민’(在新民)이다. 누가 백성을 새롭게 하는가? 정치를 독점한 사대부들이다. 백성이 정치하는 사람들이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대상이 되면 정치에서 백성들 뜻이 무시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백성들 뜻이 사대부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롭게 만드는 것이 사대부들에게는 바른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 철학은 근본적으로 백성을 믿지 못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백성을 새롭게 하겠다는 명분으로 독재가 정당화되기도 했다.

공자께서 재친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2000년 후 성리학을 창시한 주자(1130~1200)가 재신민으로 바꾸었다. 재친민은 바른 정치의 본질이 ‘백성과 친함에 있다’라는 뜻이다. 백성의 뜻을 받드는 정치가 바른 정치라는 의미다. 백성을 믿어야만 백성의 뜻을 받들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자의 원시 유학은 오늘날 민주주의 대의정치의 기본 철학과 상통한다. 백성과 친해지려는 정치는 바로 민심이 천심이라고 믿는 정치다.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조선은 성리학과 사대부의 나라였다. 조선에서 백성을 사랑한 애민 군주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백성은 신민의 대상이었기에 백성을 위한 정치보다는 사대부를 위한 정치가 먼저였다. 조선 왕조 대부분의 시기에 사대부가 아닌 백성들의 삶은 질곡이었다.

만약 유학이라도 성리학보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조선에서 중시했다면 재친민이 정치의 중심이 되었을 것이고, 나라가 일제에 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신(新)과 친(親) 글자 한 자의 가르침 차이가 역사에서 주는 교훈이 너무 컸다.

오늘날 정치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소통이다. 백성을 믿고 그들의 뜻을 살피기 위해서다. 친민의 시작이 소통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 별명은 ‘바보 노무현’이다. 그는 우리 시대 정치 최대의 폐해인 동·서 지역감정을 혁파하는데 헌신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00년 부산 지역구에서 낙선 직후 기자가 질문했다.“유권자들이 섭섭하지 않습니까” “섭섭하지요. 그러나 농부가 어찌 밭을 탓하겠습니까”가 그의 대답이었다.

유권자를 탓하지 않고 낙선을 자신의 부족함 탓으로 돌리고 유권자를 믿는 자신의 소신을 밝힌 발언이었다. 친민하는 정치인이었다. 당시 그는 현역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유력했던 종로 대신 부산에서 출마해 낙선했다. 바보 아닌 바보였다.

재친민의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최근 국가재난지원금 지급 문제로 논의가 분분하다. 지급 타당성은 논외로 하자. 얼마를 줄 것인지는 국가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모두에게 줄 것인지, 소득 하위 70%에만 줄 것인지가 논의의 핵심이다. 70%에게만 준다면 실행 문제가 복잡하다. 적격자를 가리기가 쉽지 않고, 그러다가 시간이 걸려 실기할 수도 있고, 30% 중에서도 돈이 필요한 사람은 불만일 것이다.

모두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면 이런 문제들이 깨끗이 해소될 것이다. 70%에만 준다는 기준은 소득 상위 30%를 믿지 못하는 기준이다. 재난지원금을 받지 않아도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위 30%가 모두에게 준다면 당연히 받을 것이라는 불신이 전제된 기준이다.

역사에 나타난 우리 민족의 상생 정신, 외환위기 이후 금 모으기 운동, 코로나19 방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보여준 헌신에 비추어 모두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해도 상위 30%가 받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설사 받는다고 해도 그 돈을 공동체를 위해 쓸 가능성이 크다. 국민을 믿고 모두에게 지급하는 정치가 문제를 단순하게 할 것이다.

허성관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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