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 때 일왕 첫 해외 일정으로 방한 추진했었다

입력 : ㅣ 수정 : 2020-04-01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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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외교문서 24만여쪽 공개
아키히토 즉위 직후 방한 논의했지만
日 우경화 흐름에 재임 내내 한국 못 와
헝가리에 차관 주고 동유럽 첫 수교
임수경 비밀 방북 문서는 공개 안 돼
지난해 퇴위한 아키히토 일왕이 1990년 5월 도쿄를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과 아카사카 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아키히토 전 일왕이 즉위한 1989년 첫 해외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방안에 대해 한국과 일본 정부가 적극 검토했다는 사실이 31일 외교부의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 알려졌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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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퇴위한 아키히토 일왕이 1990년 5월 도쿄를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과 아카사카 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아키히토 전 일왕이 즉위한 1989년 첫 해외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방안에 대해 한국과 일본 정부가 적극 검토했다는 사실이 31일 외교부의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 알려졌다.
서울신문 DB

아키히토 전 일왕 즉위 직후인 1989년 한일 정부가 일왕의 첫 해외 일정으로 한국 방문을 진지하게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고 했던 아키히토 전 일왕의 방한은 결국 양국의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서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가 31일 비밀 보존기한 30년이 지나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89년 4월 우노 소스케 당시 일본 외무상은 한일 외무장관 회담차 일본을 방문한 최호중 외무장관에게 “한국 측 분위기가 성숙했다고 판단되면 일본 정부로서는 예견 가능한 장래에 (일왕의) 최초 해외 방문으로 방한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우노 외무상은 한국의 반일감정을 염두에 둔 듯 “한국 내에서 미묘한 상황도 있을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은밀히 답변을 듣고 싶다”고 했다.

정부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이듬해 방일을 준비하면서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을 고려할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주일대사관도 외교 전문에서 “세부 교섭 사안들과 일왕의 방한 초청 가능성을 연계해 성과를 높일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듬해 노 대통령의 일본 방문 당시 아키히토 일왕은 만찬사로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는 다소 진전된 입장을 밝혔다. 2차 세계대전과 식민통치 시기에 일왕으로 있었던 선대 히로히토 일왕은 전두환 대통령과 만나 “불행한 과거는 유감”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일왕의 방한은 재임 기간 내내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에선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나오는 등 과거사 청산 요구가 커졌고 일본도 보수 우경화 흐름이 나타나면서 결국 무산됐다. 아키히토 일왕은 황태자 신분이었던 1988년에도 한국 방문을 타진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1989년 노태우 정부 초기 주요 외교 이슈들이 담겼다. 모두 1577권(24만여쪽) 규모다. 북방외교를 펼치던 당시 정부가 동유럽 최초로 헝가리와 수교하기 위해 1억 2500만 달러의 은행차관을 제공한 사실도 포함됐다. 다만 1989년에 이뤄진 ‘임수경 방북 사건’에 대한 문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비밀 방북 관련) 간략하게 그런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에 관한 문서이기 때문에 외교문서공개심의회가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2020-04-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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