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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광고 엿보기] 음반광고에 실린 명창 5인의 스토리

[근대광고 엿보기] 음반광고에 실린 명창 5인의 스토리

손성진 기자
입력 2020-03-22 17:22
업데이트 2020-03-23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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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들의 사진을 실은 1911년 매일신보 광고.
명창들의 사진을 실은 1911년 매일신보 광고.
매일신보 1911년 10월 14일자에 근대 판소리 명창 5명의 사진을 담은 광고가 실렸다. 그들의 사진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광고가 하나의 역사적 기록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급고’(急告)라는 제목의 판소리 음반 광고에 실린 다섯 사람은 심정순, 문영수, 김홍도, 박춘재, 유명갑이다. 이들은 1911년 1월 30일 일본 도쿄로 가서 판소리와 경기 민요 등을 취입했는데 축음기 시장을 장악한 ‘일본축음기상회’가 주도해서 광고를 낸 것이다.

심정순은 충남 서산 출신의 판소리 명창이자 가야금 연주자였다. 자녀들도 판소리를 했는데 막내아들 심화영은 중고제(경기도 남쪽과 충청도에서 성행한 판소리 유파)의 마지막 계승자였다. 가수 심수봉은 심정순의 손녀다. 문영수는 구한말 이정화와 더불어 평양 날탕패(민속가무단)에서 활약하다 원각사 시절 박춘재와 짝이 돼 서도입창(西道立唱)과 재담으로 인기를 끌었다. 김홍도는 경성 기생으로 경기소리 명창이었다. 유명갑은 서울 수표교 근처에 살던 피리 연주가였다. 박춘재는 전통극과 근대극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한 경기 명창으로 조선 최고의 가객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유성기 음반을 처음으로 취입한 인물로 알려졌지만 음반이 전하지는 않는다. 1895년 6월 미국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참석했다가 미국 빅터 레코드에서 녹음했다고 한다. 그는 또 ‘십년감수’라는 4자 성어의 유래에 나오는 인물이다. 어느 날 빅터사가 고종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궁궐 안에 원통식 녹음기를 설치하고 박춘재에게 나팔 통에 입을 대고 녹음을 하게 했다. 잠시 후 원통식 납관에서 박춘재의 소리가 흘러나오자 고종이 깜짝 놀라며 “춘재야, 어서 나오너라 네 수명이 10년은 감(減)하였겠구나”라고 했는데 여기서 ‘십년감수’(十年減壽)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1900년대 초 컬럼비아와 빅터 등 미국 음반 회사들이 소리꾼들의 음반을 제작했다. 1908년에는 빅터 레코드가 100여 곡의 음반을 취입했다. 가객 김재호·이정서, 기생 향선·남수·벽도·채옥·옥도·향월·앵앵·채봉, 율객 박팔괘·오태선, 창부 신경연·송만갑, 기타 악공 등 30여 명의 소리를 녹음했다지만 10여 종만 전한다. 그러나 미국 음반 회사들은 일본에서 녹음하고 미국에서 제작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철수했다. 경술국치 이후 그 자리를 이어받은 음반회사가 위 5명의 음반을 제작한 일본축음기상회였다. 일본축음기상회는 이후에도 조선의 가객과 기생들을 일본으로 데려가 1928년까지 약 500종의 전통음악 음반을 제작, 발매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2020-03-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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