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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의 아침] 중국 본색/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국 본색/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김규환 기자
입력 2020-03-22 20:58
업데이트 2020-03-23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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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2000년 초 베이징에서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 겪은 일이다. 택시를 타고 가다 내릴 때 잔돈이 없어 100위안짜리를 운전기사에게 건넸다. 그가 거슬러 준 잔돈에는 50위안짜리도 포함돼 있었는데, 영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베이징에서는 당시 택시를 내릴 때 받는 잔돈에 가짜 돈이 섞여 있을 수 있으니 꼼꼼히 살펴보라는 얘기를 종종 들었을 정도로 위폐가 기승을 부렸다. 때문에 중국인들은 택시에서 내릴 때 받은 돈을 불빛에 비춰 보기도 하고, 만져 보고 촉감을 느끼거나 문질러 보는 등 나름의 위폐 구분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50위안짜리는 조잡하게 인쇄된 까닭에 위폐임을 식별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택시기사에게 따지니 돈을 바꿔 주며 씩 웃고는 그걸로 끝이다. 엄연한 범죄행위이지만 사과 한마디 없다. 중국인의 뻔뻔함의 한 단면이다.

중국에는 후흑학(厚黑學)이라는 ‘학문’이 있다. 사상가이자 교육가인 이종오(李宗吾·1879~1943)가 창시한 일종의 인간학이다. 낯이 두꺼워 뻔뻔하고 속이 음흉해 시커먼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다. 후흑학은 세 단계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낯가죽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시커먼 단계다. 낯가죽이 종이처럼 얇다가 서서히 성벽처럼 두꺼워지고, 얼굴은 흰색에서 회색, 검푸른색으로 변하다가 숯덩이처럼 시커멓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낯가죽이 두꺼우면서 딱딱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밝은 단계다. 이 단계에는 남들이 어떤 공격을 하더라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이 경우라도 낯이 형체와 색채가 있는 만큼 세밀히 관찰하면 시커먼 속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중국 삼국시대(220~280년) 유비(劉備)와 조조(曹操)가 대표적이다. 이 경지에 오르지 못한 한신(韓信)과 범증(範增)은 ‘루저’로 전락했다. 세 번째는 낯가죽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커먼데도 색채가 없는 단계다. 이 단계에 이르면 제아무리 얼굴이 두껍든, 속이 시커멓든 남들은 낯이 두껍다거나 속이 시커먼 인물로 여기지 않는다. 옛날 대성현에게서나 찾을 수밖에 없는 지극히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중국의 요즘 행태는 ‘후흑의 자손’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최고 지도자부터 고위 관리, 전문가가 우후죽순처럼 나서 코로나19 책임론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바이러스 발원지를 분명히 밝히라”고 지시했다. 시 주석이 앞서 인민해방군 의학연구원 등 현장 시찰과 최고 지도부 회의에서 언급한 것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해 “그들은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왔는지 안다. 우리는 모두 바이러스가 어디서 왔는지 안다”고 비판한 데 대한 반격이다.

고위 관리들은 아무 말 잔치를 하는 것처럼 마구 쏟아 낸다.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중국의 전염병 퇴치에 오명을 씌우려는 일부 국가의 시도는 중국이 세계 공중위생 안전에 중대한 공헌을 한 것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은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미군이 우한에 코로나19를 가져온 것일 수 있다”고 강변했다.

전문가도 나섰다. 감염병 권위자인 중난산(鐘南山) 공정원 원사는 지난달 “중국에서 코로나가 처음 출현했다고, 중국을 꼭 발원지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혀 발원지 논란에 불을 댕겼다.

사망자가 3200명이 넘는 초대형 재앙을 초래한 중국 지도부의 책임론을 회피하기 위한 레토릭으로 보이지만 후안무치한 일이다. 베이징이 소모적인 발원지 논전을 펼치기보다 다른 나라의 코로나19 대응에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할 일은 한다)하는 모습이 중국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2020-03-2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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