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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덮친 베네수엘라, 병원엔 약도 병상도 없다

코로나 덮친 베네수엘라, 병원엔 약도 병상도 없다

김민석 기자
김민석 기자
입력 2020-03-19 01:52
업데이트 2020-03-19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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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확진자 발생 사흘 만에 16배 늘어나

경제난에 의료체계 붕괴·마스크값 폭등
긴급자금 지원 요청했지만 IMF는 거부
손수건 마스크
손수건 마스크 코로나19 확산에도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손수건으로 마스크 대신 코와 입을 가린 베네수엘라 시민들이 17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 거리의 신문 가판대에서 거래를 하고 있다.
카라카스 AFP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볼리바르주 시우다드과야나의 한 대형병원에선 격리병동은커녕 침구가 깔린 병상이나 비누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게 예사다. 인근에 전염병 대응센터가 있지만 병원으로 환자를 실어 올 구급차도 부족한 형편이다. 최악의 정치·경제 상황을 겪는 베네수엘라의 최대 산업도시라는 이곳의 의료시설 수준이 이 정도다. 이런 베네수엘라에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지구촌을 뒤덮은 전염병에 안전지대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의료체계가 붕괴된 지 오래인 베네수엘라에서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16일(현지시간) 기준 베네수엘라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코로나19 환자는 33명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아직 미미하지만 처음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사흘 만에 16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여행 금지령과 함께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한 6개 주에서 격리를 시행하던 정부는 이날 전국에 휴교령을 내리는 등 좀더 적극적인 대처에 나섰다.

베네수엘라는 지구상에서 최대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며 한때 남미 최고의 부국이었다. 그러나 수년간 극단적 포퓰리즘 정책으로 무너진 경제는 미국의 석유 제재로 이미 파탄이 났다. 여기에 정치적 혼란도 극심하다. 미국을 비롯한 50여개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아닌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해 바람 잘 날이 없다.

이러니 감염병 대처 상황은 참담하다. 초인플레이션이 일상인 이곳에서 마스크 가격은 연일 폭등하고 있다.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거의 1만%에 달한다. 지난 13일 확진환자가 처음 나온 이후 마스크 가격은 11배 이상 뛰어 최저임금 기준 월급을 다 털어도 5장밖에 사지 못할 정도가 됐다는 현지 보도도 나왔다. 병원에선 툭하면 정전이 일어나고 라텍스 위생장갑부터 기초 항생제까지 기본 의료품도 귀한 물건이다.

최근 수년 새 450만명이 베네수엘라를 탈출했는데 의료계 종사자와 질병 전문가들이 상당수 포함돼 의료인력 수준도 속절없이 낙후됐다. 한 비정부기구가 전국 의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근무하는 의료시설에서 나오는 수돗물을 믿을 수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25%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3분의2는 장갑, 마스크, 비누, 보호안경, 수술복조차 없다고 답했다. 보건부가 실시한 역학조사는 2016년이 마지막이었다. 코로나19는 물론 디프테리아, 홍역, 말라리아 등 치료 가능한 전염병조차도 막지 못하는 실정이다.

의료체계 붕괴의 탓을 미국으로 돌리던 마두로 정부는 17일 국제통화기금(IMF)에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긴급자금 50억 달러(약 6조 2000억원)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마두로 정부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공식 정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브라질까지 베네수엘라 국경을 폐쇄하겠다고 나서 사면초가 상황이다. 루이스 엔히키 만데타 브라질 보건부 장관은 “베네수엘라는 공공보건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어,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2020-03-1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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