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배달업 10인 코로나 극복 분투기
비닐봉지 담아 배달비 줘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대구시 전체가 고립된 가운데 집배원·배달라이더 10명이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애환을 털어놨다. 사진은 접촉을 피하고자 고객이 돈을 비닐봉지에 담아 문틈에 끼워 놓은 모습.
박정훈 배달대행업체 점장 제공
박정훈 배달대행업체 점장 제공
문앞에 둘게요…마음 상해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대구시 전체가 고립된 가운데 집배원·배달라이더 10명이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애환을 털어놨다. 사진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음식을 문 앞에 놓고 인증샷을 찍은 모습.
박정훈 배달대행업체 점장 제공
박정훈 배달대행업체 점장 제공
서울신문은 2일 대구에서 묵묵히 배달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 10명에게 전화 통화로 현지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상황은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우선 대구의 경제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배달 ‘콜’ 수는 평소보다 늘었다가 다시 일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경제가 좋아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엔 대구시민들이 배달 음식에 의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마저도 시들해진 것이다.
“문 앞에 신용카드 붙여서 배달비 줘도 우린 기꺼이 찾아갑니다”
2일 대구의 코로나19 확진환자가 3000명을 넘어선 가운데 대구에서 근무하는 배달라이더들은 자구책을 만들어 코로나19 감염 예방에 힘쓰고 있다. 사진은 오토바이에 손소독제를 넣고 다니는 모습(왼쪽)과 주문한 고객 문 앞에 음식을 두고 배달이 왔음을 문자로 알리는 모습(오른쪽).
박정훈 배달대행업체 점장 제공
박정훈 배달대행업체 점장 제공
지점장인 박정수(54)씨는 “우리야 콜이 나오니까 수입 유지는 되는데, 식당 직원만 수십명인 음식점들도 영업난에 직원들에게 무급휴가를 줄 정도로 상황이 어려워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예전에는 번화가였지만 지금은 불도 다 꺼져 있어 슬럼가처럼 느껴지는 곳도 눈에 띈다”면서 “돈벌이가 사라진 식당이나 영세 업체를 위해서는 불안을 조장하는 보도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라이더들 사이에서도 감염에 대한 공포가 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만큼 자가 예방에 힘쓸 뿐이다. 라이더들은 회사에서 지급하는 마스크는 반드시 착용하고, 추위를 피하려고 착용하는 스카프도 마스크 위에 함께 두르고 있다고 한다.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는 이들도 있고, 오토바이에 손소독제를 아예 두고 다니는 라이더도 있었다.
배달 대행업체 ‘생각대로’ 수성통합센터 라이더 12명을 관리하는 조우진(29) 팀장은 “다행히 31번 확진환자가 나오기 전에 마스크를 대량으로 사놓아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며 “아직 증상이 있거나 쉬는 직원은 없다.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해 현재 이용 가능한 병원이 어딘지 확인해서 공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라이더 B씨는 “현금 결제를 할 때 테이프로 비닐봉지에 넣어서 문 앞에 두거나 벨을 누르면 문 앞에 음식을 두고 가라는 분들도 많다”며 “더 심한 고객들은 일회용 비닐장갑까지 끼고 나와 음식을 받는데, 배달을 다니면서 이런 일을 겪으면 기분이 좀 그렇다”고 말했다.
막막한 건 3000명이 넘는 코로나19 확진환자가 시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폐쇄된 건물은 파악하고 있지만, 정확히 왜 폐쇄됐는지는 일일이 확인하기가 어렵다. 확진환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수취인이 우편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반드시 대면으로 확인해야 하는 우체국 등기의 경우 어려움은 더 크다.
대구 달서우체국 이건희(45) 집배원은 “법원의 특별송달이나 보험회사 계약등기 같은 등기 우편물은 고객을 만나서 직접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위험 노출이 더 많이 될 수밖에 없다”며 “하루에만 100~120통 정도 대면 배달해야 하는데, 개인정보 때문에 확진환자 주소도 몰라 우체국 직원 중에 확진환자가 나오면 진짜 ‘슈퍼 전파자’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또 “우정사업본부도 마스크 예산을 확보했지만 구입처가 부족해 직원 마스크 공급에 어려움이 있다”며 “개인적으로 사서 착용하는 직원도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2020-03-03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