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일본 방역의 교훈/황성기 논설위원

입력 : ㅣ 수정 : 2020-02-17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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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일본을 보면, ‘재해 대응 선진국’이란 이명(異名)이 바이러스 재난에는 맞지 않는 듯싶다. 먼저 지역사회 감염이 늘어가는데도 경로 파악을 못하는 사례가 적잖이 있어서다. 일본의 방역 지침 ‘미즈기와(水際) 대책’에 구멍이 뚫린 것인데 그 구멍이 어딘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안타깝다.

미즈기와 대책은 수상에서 공격해 오는 적이 뭍을 밟기 전 물가에서 격퇴한다는 ‘미즈기와 작전’에서 유래했다. 이 개념을 빌려 일본은 공항, 항구에서 전염병의 침투를 막고 있다. 그러나 중국 우한에서 전세기로 데려온 일본인이 격리를 거부하고 귀가했는데도 저지할 규정이 없어 이들 중 확진환자가 나오는 등 ‘물가’가 속속 뚫리고 있다.

미즈기와 대책에 철저를 기하다 거꾸로 화를 키운 게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봉쇄다. 요코하마항을 출발해 요코하마항으로 돌아오던 프린세스호에 감염자 1명이 있었다는 이유로 일본 당국은 지난 3일 입항을 불허했다. 그러나 호화 여객선에 탄 사람들이 밀폐에 가까운 연금 생활에 들어가면서 감염자 확산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 어제 하루 70명의 확진환자가 발생했다. 3711명의 승객·승무원 중 355명의 확진환자가 발생했으니 9.56%의 높은 감염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니 서방 언론으로부터 ‘제2의 우한 사태’라는 말을 듣는다.

프린세스호 전원의 감염 여부 검사, 하선, 격리나 귀가·귀국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소리가 일본에서 높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감염증대책본부에서 미즈기와 대책이란 매뉴얼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평상시 일본 사회를 빈틈 없이 작동시키는 매뉴얼이 코로나19 같은 예상치 못한 전염병이 돌 때는 기능 부전에 빠지는 ‘실패학’의 좋은 실례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쓰라린 실패를 겪은 한국은 전염병에 대처하는 의료·방역 체계는 물론 시민들의 의식도 한 단계 높아졌다. 1월 20일 첫 확진환자 발생 이후 초기의 우왕좌왕은 있었지만 일선 병원과 당국, 시민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기민한 초동 대응으로 지금까지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감염증 질환은 5~6년마다 유행한다고 한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도 비켜 갔던 일본이 코로나19란 강적에 새 매뉴얼도 없이 무기력한 모습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공중보건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교과서적 예”라고 조롱하고 미국이 전세기를 내 자국민을 데려가기에 이른 ‘프린세스호 사태’를 일본 정부가 어떻게 수습할지 주목된다.

marry04@seoul.co.kr
2020-02-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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