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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카드 꺼낸 이란, 시험대 오른 트럼프… 중동 넘어 글로벌 위기 번지나

핵카드 꺼낸 이란, 시험대 오른 트럼프… 중동 넘어 글로벌 위기 번지나

김균미 기자
입력 2020-01-06 21:02
업데이트 2020-01-07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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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미의 글로벌 이슈] 美, 이란 군부 실세 사살 후폭풍·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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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지난 3일(현지시간) 이란의 군부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표적 공격으로 사살하면서 중동 지역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 공격을 승인하기 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기독교 복음주의 지지자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마이애미(미국) AFP 연합뉴스
미국이 지난 3일(현지시간) 이란의 군부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표적 공격으로 사살하면서 중동 지역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 공격을 승인하기 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기독교 복음주의 지지자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마이애미(미국) AFP 연합뉴스
새해 벽두부터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2018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한 뒤 불안불안하던 중동 상황이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3일(현지시간) 이란의 군부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을 드론을 이용한 표적 공격으로 사살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즉각 철저한 보복을 천명한 데 이어 이란 정부가 5일 사실상 핵합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미국과 유럽, 중동 국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지 않으면 핵프로그램을 재가동하겠다는 얘기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벌인 전임 미국 대통령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이들 국가에서 발을 빼려 애써 온 트럼프 대통령. 지난해부터 시리아와 이라크 등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미군을 증파하더니 급기야 이란이라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전면전으로 확대하기에는 미국과 이란 모두 부담이 너무 커 국지전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공격과 보복의 악순환이 반복되면 최악의 상황도 완전 배제할 수 없다고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미국의 최대압박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고, 임박한 공격을 제거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은 트럼프 대외정책의 전환을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분간 고조되는 이란 위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 조짐을 보이는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북한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폼페이오 “이라크 국민은 미군 주둔 지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자 지난 4일 트위터를 통해 이란이 미국인과 미국의 자산을 공격할 것에 대비해 이란의 52곳을 이미 공격 목표로 정해 놓았고 최첨단 무기들을 동원할 것이라고 반격했다. 52라는 숫자는 1977년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444일간 억류됐던 미국인 인질 수다.

그러자 이번에는 국방장관을 지낸 이란 최고지도자의 군사 수석보좌관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을 상대로 군사 대응 방침을 밝혔다. 미국의 군사시설 등 35곳과 이스라엘 텔아비브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긴장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이 관계자는 문화유산도 공격 목표에 포함돼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내용을 문제 삼으며 이는 유엔 결의에 위배된다고 경고까지 하면서 맞대응하고 있다. 계속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갈라졌던 이란의 민심은 이번 공격을 계기로 반미로 모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라크 의회는 5일 미군은 물론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미군이 바그다드 공항에서 이란군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의 요인을 일방적으로 표적 공격해 살해한 것은 주권 침해라며 이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라크 국민들이 이슬람국가(IS) 잔당 격퇴를 위해 미군 주둔을 지지한다며 이라크 의회의 결의를 일축했다.

이라크 의회 결의는 구속력이 없고, 미국 정부가 철수 요구를 받아들일지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란 위기가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고 이라크 내 반미 감정이 높아져 미군 철수 요구가 거세지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지난 4일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에서 “이라크 정부가 (이란의 압박에 떠밀려) 5000명 규모의 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이라크에서 이란의 영향력과 이란이 지원하는 테러단체들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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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지난 3일(현지시간) 이란의 군부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표적 공격으로 사살하면서 중동 지역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5일 이란 북동부의 마슈하드시에서 이란 국민들이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숨진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관을 실은 차량을 에워싸고 애도의 행진을 하고 있다. 마슈하드(이란) AFP 연합뉴스
미국이 지난 3일(현지시간) 이란의 군부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표적 공격으로 사살하면서 중동 지역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5일 이란 북동부의 마슈하드시에서 이란 국민들이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숨진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관을 실은 차량을 에워싸고 애도의 행진을 하고 있다.
마슈하드(이란) AFP 연합뉴스
●솔레이마니 제거로 불안정한 중동에 중대 변화

미국은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 이전에도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과 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를 추적해 제거했다. 빈라덴이나 알 바그다디는 테러단체의 지도자였지만, 솔레이마니는 이란이라는 국가의 군 지도자라는 점에서 의미와 파장이 다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에 위협이 되는 솔레이마니를 제거하고 싶어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은 분석한다. 즉 이란의 군 실세를 제거할 경우 자칫 이란과의 전면전으로 불똥이 튈 위험이 크다. 그럴 경우 유럽과 중동의 동맹들로부터 소외될 수 있고 중동에서의 입지도 악화시킬 수 있어 선택지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 온 트럼프 대통령이 ‘방어적 공격’이라고 주장하며 이란에 제한적 군사행동을 승인한 것은 의외다. 상원의 탄핵심판과 재선 레이스를 염두에 둔 정치적 결정으로 보이는 이유다.

하스 회장은 “이번에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직접 제거한 것은 2003년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이래 불안정한 중동 정세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표적 공격 그 자체보다는 이로 인한 후폭풍이 중동 및 세계정세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국지전에 그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지만 장담하기는 어렵다. 분쟁을 촉발하기는 쉬워도 빠져나오거나 종식시키는 건 쉽지 않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외교안보팀이 후폭풍을 과소평가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경험 부족으로 두세 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결정해 중동의 화약고에 불을 댕겼다는 비판이 골자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힘을 제대로 보여 줌으로써 이란의 도발을 저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이 중에는 미 중부사령관과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가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5일 대통령들이 군사적 충돌 위기에 처하면 노련한 참모들과 믿을 만한 정보 자산, 든든한 동맹들, 국민의 신뢰가 중요한데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4가지가 모두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외교안보팀의 잦은 교체로 폼페이오 장관을 제외하고는 대외정책을 다뤄 본 전문가가 거의 없다. 러시아 스캔들을 비롯해 취임 초부터 자국 정보기관을 대놓고 불신하며 갈등을 빚어 왔다. 정보기관의 분석보다 자신의 직관에 의존해 주요 결정을 내려왔다. 또 동맹 관계를 돈으로 평가하는 트럼프식 접근은 우방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원인이 됐다. 이번 표적 공격 계획도 영국과 프랑스 등에 사전에 통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고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국무장관이 서운함을 토로하고 있다.

●유럽·중동동맹국 중재… 美와 유대 쉽지 않아

이란 사태가 중동 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과 중동의 동맹국들이 일단은 외교적 중재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동맹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바뀌지 않는다면 강력한 유대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취임 이후 최대의 외교적 시험대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 이란 위기를 상원의 탄핵심판 정국을 돌파하고 재선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카드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많다. 상원의 탄핵심판을 앞둔 이 시점에 왜 솔레이마니를 표적 공격했는지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상원의 탄핵심판에 쏠린 관심을 이란으로 돌리고, 강한 대통령의 면모를 과시함으로써 이를 몇 안 되는 외교적 성과로 포장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란 위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한 대로 전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보보다 자신의 직관을 믿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의 파장은 미국과 이란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 위기가 중동 위기로, 글로벌 위기로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할 능력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 있을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대기자 kmkim@seoul.co.kr
2020-01-0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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