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반성커녕 한일관계 파탄 내…기약 없는 기다림은 더 큰 아픔”

입력 : ㅣ 수정 : 2019-10-31 01:41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대법, 日전범기업 징용배상 판결 1년… 여전히 눈물 젖은 피해자들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확정 판결이 나온 지 1년이 지났지만 사과나 배상 없이 버티기로 일관하는 일본 전범 기업들의 행태로 피해자들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받지 못하고 있다. 징용 피해자인 이춘식(왼쪽) 할아버지와 양금덕(오른쪽) 할머니는 30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지난 1년간의 소회를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할아버지 등은 “남은 생존자는 모두 고령으로 건강 문제 때문에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만큼 하루빨리 일본 기업의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확정 판결이 나온 지 1년이 지났지만 사과나 배상 없이 버티기로 일관하는 일본 전범 기업들의 행태로 피해자들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받지 못하고 있다. 징용 피해자인 이춘식(왼쪽) 할아버지와 양금덕(오른쪽) 할머니는 30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지난 1년간의 소회를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할아버지 등은 “남은 생존자는 모두 고령으로 건강 문제 때문에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만큼 하루빨리 일본 기업의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동물 취급한 생각만 하면 이가 갈려
사죄 않으면 눈 감을 수 없다” 눈시울
“할아버지, 자책하지 마시고 행복하세요”
초등생 편지 등 국민 지지에 감사 전해
유엔 인권이사회에 진정… 추가 손배소


“한국 사람을 동물 취급한 생각만 하면 이가 갈려.”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됐던 양금덕(90) 할머니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1년 전 우리 대법원이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내렸을 때만 해도 양 할머니를 비롯한 징용 피해자들은 “이젠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 동안 일본 정부와 기업은 사과와 배상의 뜻을 내비치기는커녕 한일 관계 파탄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또 다른 보복을 가했다. 피해자들이 “오히려 우리 때문에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된 것 같다”며 자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법원 판결 1년을 맞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이 30일 주최한 기자회견에는 양 할머니와 이춘식(95) 할아버지가 직접 참여해 지난 1년의 소회를 밝혔다.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아픔은 지난 1년 동안 오히려 커졌다. 이 할아버지는 신일철주금(옛 일본제철)을 상대로, 양 할머니는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인당 1억~1억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받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양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또렷한 기억이 묻어 있었다. “44년에 여수에서 배를 타고 138명이 동원돼 나고야로 갔어. ‘학교를 보내준다’는 교장의 회유에 배를 탔는데, 밥알 두 쪽 먹고 동물 취급당했어.” 양 할머니는 “나고야 미쓰비시는 물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우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면서 “사죄하지 않으면 눈을 감을 수 없다”고 외쳤다.

양 할머니의 증언을 듣던 이 할아버지는 그 시절이 기억나는 듯 눈물을 훔쳤다. 마이크를 쥔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할 말이 아주 많은데 목이 막혀 다 못 하겠다”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나를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할아버지, 이제 자책하지 말고 행복하세요”라는 초등학생의 응원 편지에 또 눈시울을 붉혔다. 이 할아버지는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승소한 원고 4명 중 유일한 생존자다. 할아버지는 1943년 신일철주금의 가마이시 제철소로 강제동원돼 석탄을 탄차에 퍼올리고 용광로에 쏟아 넣는 일을 했다.

피해자들은 대법 판결 이후 일본기업의 국내 압류자산을 매각 신청하는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민변은 유엔 인권이사회에 진정을 넣고, 일본 기업 쿠마가이 구미, 니시마쓰 등을 상대로 추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민주노총과 함께 국제노동기구(ILO)에 일본 정부와 기업을 제소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제 배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는 일본 기업은 10곳이 넘는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2019-10-31 1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블로그

서울Eye - 포토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