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1995년 WTO 출범 이후 농민들 삶은 나아진 게 없다

1995년 WTO 출범 이후 농민들 삶은 나아진 게 없다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19-10-23 22:42
업데이트 2019-10-24 01:58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 앞두고 거센 반발

연간 농업소득 1047만원서 1292만원으로
23년간 물가상승률 감안하면 되레 줄어
작년 농가 총소득, 도시 가구의 65% 수준
농민들 “농업 홀대하면서 또 희생양 삼나”
정부 내일 개도국 지위 포기 공식화할 듯
홍남기 “포기 안 하면 상응조치 감내해야”
이미지 확대
25일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 지위 포기 발표를 앞두고 농업계가 거세게 반발하는 까닭은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라 농가 희생에 대한 트라우마가 자리잡고 있다. 국가 산업 전체의 파급 효과를 고려해 정부 약속을 믿고 자유무역협정(FTA) 때마다 양보를 거듭해 왔지만 농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WTO가 출범한 1995년 ‘농업소득’(순수하게 농업을 통해 얻은 소득)은 1047만원에서 지난해 1292만원으로 23.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 23년간 물가가 1.9배 오른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인 셈이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은 3배 가까이 성장했다. 한국농축산연합회 관계자는 23일 “수입 농산물 개방으로 농가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농가의 가구당 연평균 소득은 1995년 2180만원에서 지난해 4206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농민들이 겸업 등을 통해 얻은 농업외소득은 1995년 693만원에서 지난해 1695만원으로 2.4배 증가했다. 정부 보조금이 포함된 이전소득도 440만원에서 989만원으로 2.2배 늘었다. 그럼에도 지난해 전체 농가 평균 소득(4206만원)은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 소득(6482만원)의 65% 수준이다. 이 중 순수한 농업소득(1292만원)은 전체 농가 소득의 31%에 그친다. 1995년 485만명이던 농업 인구도 고령화와 도시화로 인해 지난해 231만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5%에 불과한 것도 ‘농업 홀대’ 논란이 이어지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 농가가 비료, 농약, 농기계 등 투입재를 비싸게 사는 반면 농산물은 싸게 파는 구조라 소득이 늘어나기 힘들다”면서 “쌀을 비롯한 농산물의 1인당 소비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수요가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해 가격이 낮아지고 소득이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난해 어떤 작목이 괜찮았다고 하면 이듬해 해당 작목을 많이 심어 공급 과잉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농업전문연구기관 ‘GS&J 인스티튜트’의 이정환 이사장은 “농산물 수입 증가에 대응해 정부가 농가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지만 물가와 비교한 농산물의 실질가격은 하락했다”면서 “이러한 농가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작용해 개도국 지위를 마지막 버팀목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정부가 개도국 졸업 선언을 하더라도 중요 농산물의 기준 가격을 정하고 가격이 떨어지면 차액의 일부를 보전해 주는 가격 리스크 완충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25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 측에서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의견이 나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도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면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22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해 로버트 라이트하우저 미 무역대표부(USRT) 대표 등을 면담한 뒤 “미국에 우리나라 농업의 민감성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기재부와 농업계는 지난 22일 파행으로 끝난 민관 합동 간담회를 24일 재개한다.

세종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19-10-24 18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