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진의 교실 풍경] 무례한 사람들

입력 : ㅣ 수정 : 2019-10-22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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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진 서울 누원고 교사

▲ 이의진 서울 누원고 교사

한 여학생이 달려온다. 손가락으로 남학생 한 명을 가리키며 울먹거린다. 샘, 쟤가 저보고 눈이 짝짝이라 이상하게 생긴 데다 돼지라고 놀려요. 남학생을 바라보며 사실을 확인한다.

정말 그렇게 말했니? 사실을 말한 건데, 왜요? 그건 사실이 아니라 ‘평가’란다. 어느 누구도 외모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평가할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아. 예쁘다고 칭찬하는 건 되고 못생긴 걸 못생겼다고 말하는 건 안 되나요? 설령 예쁘다고 말한다 해도 평가이기 때문에 안 되는 거야. 그건 예의가 아니지. 남학생은 불만스럽게 입을 내밀었지만 더이상 말하지는 않는다.

늦은 밤 택시를 탔다. 회식에 같이 참석했던 분이 손사래를 치는데도 총무로 고생했다며 구태여 배웅을 하신다. 차가 출발하자 기사가 나를 슬쩍 돌아본다. 짐짓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기사가 다시 나를 돌아보며 결국 한마디 한다. 주부가 늦은 시간까지 집에 안 들어가셔도 되나요? 밤 11시였다. 나를 제외한 남자들은 여전히 회식 자리에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기사가 다시 말한다. 남자들하고 노는 게 재미있지요? 피곤에 잠식당하는 상황에서도 천천히 느릿느릿 대답했다. 직장 동료가 남자인가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기사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다소 붐비는 퇴근 시간 전철 안. 할아버지 한 분이 좀 취한 듯 몸을 흔들며 탄다. 주변을 둘러본다. 노약자석까지는 좀 떨어진 위치다. 어린 여학생 앞에 서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싸가지가 없다며, 옛날에는 안 그랬다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다. 앉아 있던 여학생이 황급히 일어난다. 그 자리에 할아버지가 앉는다. 바로 옆의 건장한 남자들은 눈을 감고 자고 있다. 할아버지가 말하는 싸가지는 어린 여학생과 건장한 남자에게 다르게 적용된 셈이다.

가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무례함, 예의 없음을 온몸으로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예의 없음’이 예외 없이 약한 사람, 사회적 소수자를 향해 달려가는 걸 본다. 자기보다 힘이 세거나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에게도 일관되게 표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열하다. 특히 만만한 대상을 찾아다니는 이러한 무례함은 연예인을 표적으로 하는 인터넷 댓글창이 좋은 무대가 된 지 오래됐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라도 한번 돌기 시작하면 떼로 몰려간다. 남들과 다르다거나 좀 튄다고 생각되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을 쏟아낸다.

얼마 전 용감하고 당당했던 배우이자 가수가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연예인에게 별 관심 없던 나조차 가끔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그녀를 둘러싼 많은 논란을 접하고 있었다. 그녀는 동료 배우를 ‘선배님’이라 부르지 않았다고, 속옷을 ‘제대로’ 챙겨 입지 않는다고 욕을 먹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일컬어 관심을 끌기 위해 기행을 일삼는 ‘관종’이라 불렀다. 그녀에게는 늘 악성 댓글이 따라다녔고 악성 댓글과 루머 등으로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계 여성의 날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기꺼이 기념했고, ‘Girls Supporting Girls’(여자는 여자가 돕는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 ‘관심을 끌기 위한 이상한 행동’으로 불리던 그의 시도들은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연대의 힘’이 되었던 거다.

그녀를 관종이니 뭐니 하며 이상한 여자 취급했지만, 그녀를 향해 수없이 퍼부어지던 악성 댓글과 루머는 사실 만만한 아이돌 출신 어린 여자에 대한 무례함과 폭력이었을 뿐이다.

‘튀는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함께 늙어 갈 수 있는 세상, 약자들이 표적이 돼 숨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리하여 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만들어 가는 사회를 꿈꾼다. 이런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는 것이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요즈음이다.
2019-10-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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