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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38회] ‘법원 스파이’ 헌재 파견 판사, “헌재가 정보유출 용인했지만…부적절했다”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38회] ‘법원 스파이’ 헌재 파견 판사, “헌재가 정보유출 용인했지만…부적절했다”

이민영 기자
이민영 기자
입력 2019-10-19 14:00
업데이트 2019-10-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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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37차 공판 지상중계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했다. 특히 헌재가 ‘한정위헌’을 선고해 대법원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대법원은 헌재를 견제하기 위해 헌재 파견 판사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 2월부터 2년간 헌법재판소에 파견돼 연구관으로 근무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예상 결과, 이정미 헌법재판관 후임 지명 문제, 매립지 관할 분쟁, 국회선진화법 권한쟁의 심판, 제주대 교수 뇌물수수 사건, 한일청구권 협정 등 총 325건의 정보를 대법원측에 전달한 최모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최 부장판사는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3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 부장판사는 “법원과 헌재 사이 소통창구 역할을 한다고 인식했고, 헌재에서도 (대법원으로 정보 유출을) 일부 용인한다고 생각했다”면서도 “부적절했고, 후회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최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지난 5월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임 전 차장 지시로 헌재 정보를 대법원에 보고했다”며 “임 전 차장의 지시를 지금이라면 거절했을 것이고, 후회가 된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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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향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법정 향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9.9.9 연합뉴스
 

 ●“법원과 헌재 사이 소통창구라고 인식…‘법원스파이’라 놀림받기도”

 최 부장판사는 헌재 파견 기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통해 헌재가 심리 중인 사건과 동향에 대해 정보를 보고했다. 이 전 상임위원은 최 부장판사에게 “인사평정권자는 법원행정처 처장이다”며 “법원과 관련된 민감하고 중요한 정보는 그때그때 전달해달라”라고 말했다. 최 부장판사는 이 전 상임위원에게 정보를 전달하던 중 헌재의 한일청구권 협정 사건 예상 시기를 보고하자, 임 전 차장이 처음으로 직접 최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이 한일청구권 협정 관련 보고서를 강제징용 사건의 일본기업 대리인 김앤장 문의로 요청한 사실을 듣자 “전혀 알지 못했다”며 놀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 부장판사는 헌재 파견을 시작한 2015년 3월 발령 인사를 하러 가자,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법원행정처장도 “헌재 파견 법관들이 최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바로 알려달라는 취지로 당부했다”고 했다. 박 전 처장이 “파견 나온 검사들은 친정인 법무부나 대검을 위해서 노력한다는데, 헌재 파견 판사들은 한정위헌 보고도 하고 그런다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전 상임위원에게 전달한 헌재 사건 정보가 대법원장에게 보고될거라 생각했나’는 검사 질문에는 “중요한거면 보고되리라 생각했다”고 했다.

 ‘직무상 명령’이라고 생각했냐는 검사의 질문에 최 부장판사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글쎄요. 일이라는 게 사실 뭐 ‘이건 직무상 명령이야’라 말하고 시키는 경우가 힘드니까요. 어쨌든 지시같이 생각하고 하긴 했습니다. 물론 그때 거절했으면 어땠을까 후회됩니다. 용기를 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관성이 생겨서 보고를 하게 됐어요. 많이 요구도 하시고. 처음 느낌과 나중 느낌이 다르긴 한데.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해서 안 한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안 하면 다른 분이 대신 하게될 수도 있는 생각이 드니까요.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보고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헌재 파견 법관이 그런 역할(헌재 소장 동향 전달)까지 부여받은 건 아니지 않나요.”(검사)

 “저는 독특한…법원 대표로 양기관의 소통창구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최 부장판사)

 “헌재에서도 용인한건가요.”(검사)

 “박한철 헌재 소장님이 연임하지 않겠다는 말은 저는 오히려 전달하기를 바랐던 거 같습니다. 대법원에서 헌재 소장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 그렇지 않다는 걸 알리기 바라는 취지로 이해했습니다.”(최 부장판사)

 “명시적으로 알려주라고 한 적이 있나요.”(검사)

 “재판관들이 ‘이런 건 법원에도 알려주라‘고 이야기했다기보다는 ‘법원도 이런 입장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제가 애매한 상황 속에 놓인 사람이었습니다.”(최 부장판사)

 “지속적으로 행정처에 검토보고서, 평의 내용, 헌재 내부 동향, 헌재 보관자료 계속 보내준 이유가 무엇인가요.”(검사)

 “계속 요구를 하시니까 하다보면 드리게 됐습니다.”(최 부장판사)

 “증인이 소통창구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건가요.”(검사)

 “그런 것도 섞여 있습니다.”(최 부장판사)

 “헌재가 내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까지 용인한건가요. 거기에 연구관 보고서나 평의 내용 제공까지 포함된건가요.”(검사)

 “그 안에서, 재판관님들도 저를 ‘법원스파이’라고 많이 놀리긴 하셨는데요. 뭐랄까요… 참 모르시겠지만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최 부장판사)

 “애매하다는게 이해가 잘안되는데 넘어가겠습니다.”(검사)

 “적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최 부장판사)

 “대법원에서도 헌재 자료 필요하다면 증인이 아니라 행정처가 직접 자료 제공요청하면 되지 않나요.”(검사)

 “그걸 양성화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것 같습니다.”(최 부장판사)

 “행정처 아닌 동료선후배 법관들에게 자료 제공하는 경우도 일부 있었는데 그럴때도 보안을 철저히 강조하고 알고만 있고, 인용도 하지말라는 메일도 있던데 이런것들도 증인 통해서 헌재 유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는걸 꺼려서 그랬나요.”(검사)

 “꺼려집니다. 하여튼 양성화돼있는 상황은 아니니까요.”(최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전경 이미지자료
헌법재판소 전경 이미지자료


 ●헌재 분위기 자유로워 식사, 티타임에서 정보 수집…“법원 외부로 나가리라 상상 못해”

 최 부장판사는 각종 헌재 정보를 어떻게 수집해서 대법원 혹은 법원행정처로 보고할 수 있었을까. 최 부장판사는 법관 신분으로 헌재에 파견갔다는 특수성때문에 법원내부망인 코트넷과 헌재 내부망에 모두 접근이 가능했다. 헌재 재판관부터 연구관까지 식사나 티타임 자리에서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해줘서 들을 수 있었다고도 증언했다.

 최 부장판사는 전반적으로 “헌재와 대법원이 같이 가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헌법재판관이 자신에게 대법원의 입장을 물어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최 부장판사는 “헌재와 대법원 판단이 다를 경우 곤란해질 수 있기에 서로 사전에 조율해서 교통정리를 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박병대 전 대법관의 변호인이 “재판관과 연구관이 증인에게 ‘법원스파이’라고 놀리면서 법원에 전달할 것을 예상했지만 중요 정보를 스스로 오픈했다는 진술이 있는데 사실인가”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최 부장판사는 “(대법원과 헌재가) 사건이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아서 법류이 위헌이냐 아니면 법률해석이 위헌이냐의 문제였다”며 “양쪽으로 똑같은 사건이 많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증인이 이전 부장 연구관들이, 대법원과 헌재사이 소통역할한 사례나 내용 알거나 들은 것 있나요.”(변호인)

 “옛날 연구부장 하셨던 어르신들께서 본인도 저같은 일했다는 얘기 들은적 있습니다.”(최 부장판사)

 “식사자리에서 자연스레 의견을 들었고 2, 3차 평의 분위기나 사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나요.”(변호인)

 “많은 재판관님과 식사자리나 티타임이 많은데 재판관님들이 저와 사건 얘기하는거 좋아했습니다. 편하게 의논할 만한 상대로 생각했는지 그런 뉘앙스나 생각 들었던 것 같습니다.”(최 부장판사)

 “때로는 재판관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담당 연구관이나 자신 신뢰연구관 따로불러 토의하기도 하죠? 그 과정에서 재판관 입장이 다수의견인지 소수인지 자연히 알게되는 경우가 있나요.”(변호인)

 “그렇습니다. (헌재) 안에 있는 분들은 다 알게 됩니다.”(최 부장판사)

 “검찰에 평의 관련 이규진 상임위원에게 전달한것 공무상비밀누설에 해당할 가능성 높다고 말했던 것 기억하나요.”(변호인)

 “네.”(최 부장판사)

 “재판관 식사자리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듣게 된 내용이라면, 특히 증인은 평의 당사자 아니고 당사자인 헌재재판관이 알려준거라면 증인이 외부에 유출해도 상관없는 내용 아닌가요.”(변호인)

 “그렇게 볼 수 도…같은 법관이다보니 내부 울타리라고 생각한 측면이 있습니다. (법원) 외부로 나가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그건 믿었던것 같습니다.”(최 부장판사)

 이날 재판은 오후 11시 30분이 돼서야 끝났다. 재판 말미에 좌배석 판사가 “파견 부장연구관의 위치가 애매하다고 말했는데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묻자 최 부장판사는 소회를 털어놨다.

 “부조리극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불안하다는 생각도 들구요. 안할 수는 없는데 양쪽 기관에서도 사실은 저를 다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헌재에서도 정식으로 줄 수는 없는데 저를 통해서 정보를 줄 수도 있고, 서로 또 통하는 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제가 중간에 끼어있던 셈입니다. 공식화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또 필요한 역할이 있을 수도 있는거죠. 애매합니다. 선배들도 해왔던 역할인데 강도가 세졌다가 약해졌다가 강도의 변화가 있기도 하구요. 불행하다는 생각도 들고. 30년동안 곪아오던 것이…법원도 그렇고 헌재도 그렇고 밝혀져서는 안될 내용 같은데 이런게 밝혀져서 되게 부끄럽습니다. 헌재 관계분들께도 죄송하고 여러 가지로 슬프고 그렇습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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