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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무용 모습 그린 1천500년전 신라 행렬도 발견

수렵·무용 모습 그린 1천500년전 신라 행렬도 발견

강경민 기자
입력 2019-10-16 13:45
업데이트 2019-10-1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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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쪽샘 44호분 토기서 확인…대형항아리 등 유물 110여점 출토“인물·복식 묘사 구체적…고구려와 교류 보여주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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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샘 44호분서 토기에 새긴 신라 행렬도 발견
쪽샘 44호분서 토기에 새긴 신라 행렬도 발견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14년부터 진행 중인 쪽샘 44호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 발굴조사에서 신라 행렬도가 새겨진 토기와 말 문양이 새겨진 토기, 44호 제사와 관련된 유물 110여점을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사진은 선각문양 세부 내용. 2019.10.16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연합뉴스
말을 탄 사람과 그를 따르는 개, 활을 들고 사슴과 멧돼지를 사냥하는 사람들, 기마행렬 뒤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

신라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돌무지덜넛무덤)인 경주 쪽샘 44호분에 묻은 토기에서 1천500년 전쯤 선으로 표현한 행렬도로 보이는 정밀한 그림이 나왔다.

기마·수렵·무용 모습을 복합적으로 묘사한 신라토기가 발견되기는 처음으로, 인물·동물·복식 묘사가 구체적이고 회화성이 뛰어난 흥미로운 자료로 평가된다. 당대 신라 사회상과 사후 관념, 신라와 고구려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유물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5세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황오동 쪽샘 44호분 발굴조사를 통해 호석(護石·무덤 둘레에 쌓는 돌) 북쪽에서 신라 행렬도가 새겨진 장경호(長頸壺·긴목항아리) 조각들을 수습해 16일 공개했다.

쪽샘 44호분은 장축 30.8m·단축 23.1m인 타원형으로, 국립경주박물관이 조사 중인 금령총(金鈴塚)과 규모가 유사한 중형 적석목곽묘다. 2007년 고분 위치를 확인했고, 2014년 무덤 주변에 발굴 과정을 볼 수 있는 가설 건물을 세웠다. 쪽샘은 샘물이 맑아 쪽빛을 띤다고 해서 붙은 지명으로, 4∼6세기 신라 왕족과 귀족 무덤이 밀집했다.

이번에 찾은 장경호는 높이가 약 40㎝로 판단되며, 대형 항아리인 대호(大壺) 옆에서 드러났다. 제작 시기는 5세기 중후반으로 짐작되고, 무덤 제사에 사용했다가 일부러 깨뜨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항아리 목과 어깨, 몸체 위쪽에 그린 그림은 상하 4단으로 구성된다. 가장 위쪽인 1단과 그 아래인 2단, 가장 아래쪽인 4단에는 기하학 문양을 반복해서 새겼다. 눈금이 여러 개인 다치구(多齒具)라는 도구로 그림을 제작했다.

관심을 끄는 그림들은 3단에 있는데, 기마행렬·무용·수렵·주인공으로 이뤄졌다. 기마행렬에는 사람이 탄 말 한 마리와 사람이 없는 말 두 마리가 있다. 말은 갈기를 의도적으로 묶어 뿔처럼 보이게 했다.

무용수는 각각 바지와 치마를 입었다. 이에 대해 연구소 관계자는 “남녀를 구분한 것은 아니다”라며 “신라 토우 중에 긴 두루마기를 입은 남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수렵 장면에는 활을 든 사람과 동물을 그렸다. 동물은 암사슴과 수사슴, 멧돼지 등으로 추정된다. 주인공은 가장 크게 표현했으며, 앞뒤에 개를 닮은 동물이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개는 무덤을 지키는 수묘(守墓)의 동물”이라며 “무용과 수렵 등 그림 구성이 고구려 고분벽화와 유사해 신라와 고구려 관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5세기 신라 토기는 보통 그림을 새기는 대신 토우를 붙인다”며 “신라 행렬도 추정 회화로는 울산 천전리 각석 암각화가 유일하게 알려졌는데, 말을 탄 사람과 걸어가는 사람만 있어서 구성이 쪽샘 44호분 토기만큼 다채롭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자인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단편적으로 사람이나 동물 하나를 그리지 않고 풍경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며 “5세기에 신라는 정치적으로 고구려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주인공 옆에 있는 개는 고구려 요소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덤 주변에 토기를 묻는 행위는 고구려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한반도 남부를 중심으로 확인되는데, 쪽샘 44호분에서는 신라 고유 문화와 고구려 문화가 혼재돼 나타난다는 점이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강현숙 동국대 교수는 토기에 대해 “신라인들의 장송(葬送) 관념이 반영된 유물”이라며 “형태는 전형적인 신라 유물이지만, 그림은 기존 신라 토기에서 나온 사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행렬도 토기 외에도 호석 북쪽에서 그림이 있는 토기를 더 발견했다. 발형기대(鉢形器臺·그릇받침) 다리 부분 2점으로, 표면에 말을 그렸다.

그림 속 말은 갈기와 다리 관절·근육·발굽이 선명하며, 가슴과 몸통에는 격자무늬를 새겼다. 이 무늬는 말갑옷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 토기 말 그림 중 회화적으로 우수한 편이라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호석 북쪽에서는 대호 9점을 비롯해 제사 유물 110여점이 출토됐다. 대호는 호석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묻었고, 대호 내외부에서는 고배(高杯·굽다리접시), 개배(蓋杯·뚜껑접시), 토제 악기, 토제 방울 같은 작은 토기가 나왔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시차를 두고 몇 차례에 걸쳐 대호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처럼 열을 지어 대호를 배치한 사례는 서봉총 남분인 데이비드총과 금령총 등 중대형 적석목곽묘에서만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신라 무덤제사 양상과 내용을 확인했다는 점이 조사 성과”라며 “남은 과제는 적석부 조사에 이어 내년 상반기에 진행할 매장주체부 발굴”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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