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서사답게 발단은 대부호 레오니디스의 죽음이다. 그는 주사를 맞고 사망했다. 원래 당뇨약이 들어 있어야 했을 용기에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녹내장약이 담겨 있던 것이다. 손녀 소피아(스테파니 마티니)는 탐정 찰스(맥스 아이언스)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의뢰한다. 아무래도 집안 식구가 범인인 듯하다. 그녀가 말한다.
“우린 아주 이상한 가문이에요. 서로 다른 종류의 잔인함을 갖고 있어요. 그게 너무 불안해요.” 이런 고백은 그녀도 용의선상에 오르게 만든다. 실제로 소피아 역시 레오니디스가의 일원으로서 기묘한 면을 언뜻언뜻 내보인다. 그녀와 전부터 알던 사이지만 찰스는 소피아조차 믿을 수 없다.
찰스는 비뚤어진 집에 가서 뒤틀린 가족을 한 명 한 명 만난다. 그들 전부에게는 레오니디스를 살해할 만한 동기가 있다. 자수성가한 이 거부는 가부장의 전형이다. 생전에 그는 가족을 옴짝달싹 못하게 자신의 틀에 가둬놓았다. 처제 이디스(글렌 클로스), 아들 필립(줄리언 샌즈)로저(크리스티안 맥케이), 며느리 마그다(질리언 앤더슨)클레멘시(아만다 애빙턴), 손주 유스터스(프레스턴 네이만)조세핀(아너 니프시), 젊은 아내 브렌다(크리스티나 헨드릭스), 가정교사 브라운(존 헤퍼난)까지 말이다. 그러니까 대체 누가 레오니디스를 죽인 걸까. 찰스는 혼란에 빠진다. 이제부터 그가 살인자를 특정해 가는 과정이 관객에게 재미를 줄 테다.
고백하자면 나는 헛다리 짚었다. 결말을 확인하고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불쾌하진 않았다. 복선과 암시를 내가 눈치 채지 못했을 뿐이니까. 실은 애거사 크리스티와의 대결에서 나는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영화를 자꾸 찾아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승리하고 싶어서? 설마 그럴 리가. 패배의 달콤함에 기꺼이 취하고 싶어서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