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일괄타결’반대 표명… 김정은 ‘단계적 비핵화’ 급물살

입력 : ㅣ 수정 : 2019-09-1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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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통령 첫 ‘리비아 모델’ 변화 언급
경질된 볼턴의 ‘선 비핵화-후 체제보장’
北은 ‘정권교체 방식’이라며 극렬 반발
김정은에게 협상 복귀 명분 제공이자
유연한 접근으로 성과 내겠다는 의지


“비핵화·평화체제 등 다층적 동시 협상
北 영변 동결·검증-美 종전선언” 전망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라는 선거 캠페인 문구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버지니아주 스털링에 있는 본인 소유 골프장에 가기 위해 백악관을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경질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하던 일괄타결식 북한 비핵화에 반대한다고 밝혀 북한의 북미 협상 복귀를 유도했다. 워싱턴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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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라는 선거 캠페인 문구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버지니아주 스털링에 있는 본인 소유 골프장에 가기 위해 백악관을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경질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하던 일괄타결식 북한 비핵화에 반대한다고 밝혀 북한의 북미 협상 복귀를 유도했다.
워싱턴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한 주된 이유로 볼턴 전 보좌관이 북한 비핵화에 ‘리비아 모델’을 적용하려 했던 점을 지목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리비아 모델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며 그것을 주장한 핵심 참모를 경질한 것은 북한 비핵화 협상 30여년 역사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록될 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 내 강경파가 주장해 온 ‘일괄타결식’보다는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동시적’ 비핵화에 방점을 찍는 성격이어서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북한은 미국의 리비아 모델 적용 시도는 물론 언급 자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극렬히 반발해 왔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리비아 모델 반대 발언은 북한에 북미 협상 복귀의 명분을 재차 제공하겠다는 의도뿐만 아니라 향후 협상에서 유연한 접근으로 성과를 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한마디로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로 북한과 딜(거래)을 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선 비핵화·후 체제보장’으로 요약되는 리비아 비핵화 모델은 ‘정권교체’로 귀결됐기에 북한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비핵화 방식이다. 리비아 모델은 리비아가 2003년 선제적이고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고 모든 핵 자산을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 연구소로 반출해 비핵화를 달성했던 방식을 뜻한다. 이후 미국은 리비아와 외교관계를 회복하는 등 일부 상응조치를 취했지만 체제 안전보장은 확약하지 않았다. 결국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은 2011년 리비아 내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군사 개입으로 붕괴됐고 카다피는 사망했다.

앞서 볼턴 전 보좌관이 1차 북미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해 5월 리비아 모델을 언급하자 김계관 당시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대화 상대방을 심히 자극하는 망발”이라고 비난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려할 수 있다며 반발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 모델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생각하는 모델이 전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선 바 있다. 그럼에도 볼턴 전 보좌관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일괄타결을 주장해 결국 회담이 결렬됐다.

이에 북미가 이르면 이달 말 재개할 실무협상에서 비핵화의 최종 상태와 로드맵은 포괄적으로 규정하되 구체적 합의는 단계별로 여러 차례 타결해 이행하는 방식, 즉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에 공감대를 이룰 가능성도 제기된다. 단계적 비핵화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단계적 체제 보장을 해 주거나 단계적으로 제재를 해제하는 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볼턴 식의 단선적 선후론에서 다층적 동시론으로 협상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비핵화, 평화체제 등 여러 사안을 동시적으로 진행할 수 있으며 단계적으로 할 수 있는 사안부터 쪼개서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실무협상에서는 큰 로드맵보다는 작은 딜에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은 영변 핵시설 등 모든 핵물질 생산 시설을 동결하고 검증을 받는 대신 미국은 북미 연락사무소 개소나 종전선언 등 초기 단계의 정치적 체제 안전보장 조치를 취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2019-09-1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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