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완치만큼 여생 잘 마무리해 드리는 것도 보람”

입력 : ㅣ 수정 : 2019-09-0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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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죽음에 관한 에세이 쓴 김선영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선영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부교수는 자신의 책에 생후 100일만큼 ‘마지막 3개월’이 중요하다고 썼다. “그 순간에는 감정에 휩싸여서 추스르는 게 쉽지 않죠. 누굴 만나고 싶은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미리미리 생각해 두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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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영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부교수는 자신의 책에 생후 100일만큼 ‘마지막 3개월’이 중요하다고 썼다. “그 순간에는 감정에 휩싸여서 추스르는 게 쉽지 않죠. 누굴 만나고 싶은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미리미리 생각해 두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부친 담낭암으로 돌아가신 후 의사 선택
임종 직전 썼던 투병기 읽으며 많이 울어
“하루에도 수차례 암 선고하고 죽음 조우
환자 돌아가실 때 원망 안 받는 의사 되길”


어려서 아버지를 담낭암으로 잃은 딸은 커서 암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됐다. 어느 날 문득, 딸은 그 시절 부모님이 쓴 투병기를 찾아 읽었다. 그러곤 다시 바라본 아버지의 죽음, 늘 목도하는 환자들의 죽음과 언젠가 맞이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에세이를 썼다.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라이킷)이다.

책을 쓴 김선영(43)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부교수를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병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부모의 글을 마주하면서, 자신의 글을 쓰면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매일 환자들을 보면서 겪는 일이고 모르는 일이 아닌데도. “의사는 제3자로 냉정히 결정해 줘야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거리를 두는 게 좋죠. 그래서 제가 느낀 감정들이 부끄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저 자신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 환자나 가족 분들이 위안을 얻지 않을까요.”

아버지의 임종 직전에 봤던 ‘체인스토크스호흡’(호흡중추가 손상되며 과호흡과 무호흡이 번갈아 나타나는 현상)을 의대 시험 족보에서 보곤 눈물을 흘렸다.

그가 의사가 된 건 결코 필연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기운 가세를 바로잡기 위해, 가장 빨리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의사가 되는 것이었단다. 종양내과에 가게 된 것은 “위중한 질병의 특성상 ‘병이 나빠져서’라는 핑계를 댈 수 있다는 얄팍한 계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루에도 여러 번 암을 선고하고 무수히 많은 죽음과 마주하지만 그 어떤 슬픔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그 앞에서는 항상 겸허할 수밖에 없다.

“오늘 만난 환자도 ‘끝까지 다하겠다’고는 하시면서 중환자실은 마다해요. 가족들과 함께 있길 원하시는 거죠. ‘끝까지 하겠다’는 말이 곧 ‘중환자실에 가겠다’, ‘심폐소생술을 하겠다’는 말과 기계적인 동의어는 아닐 때가 많더라고요. 환자와 가족들 얘기를 최대한 들어 보려고 노력해요.”

김 교수는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에는 기본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 고통을 줄여 주려는 충분한 노력 없이 안락사로 넘어가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삶을 늘리는 일 또한 하지 말아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결국 그 결정을 잘하는 것이 의사의 몫이고, 김 교수의 일이다. 의사로서 그의 다짐은 소박하다.

“환자들이 돌아가실 때 원망 안 하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가장 취약한 상황일 때 상처를 남기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완치된 환자가 사회로 돌아가는 것만큼, 환자의 삶을 잘 마무리해 드렸다는 보람도 크다고 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9-09-0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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