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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붉은 수돗물 사태, 수도관 망관리 점검해야/박광국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붉은 수돗물 사태, 수도관 망관리 점검해야/박광국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입력 2019-08-29 17:26
업데이트 2019-08-30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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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국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박광국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5월 30일 인천 서구 지역에서 발생한 붉은 수돗물 사태는 거의 3개월이 다 돼 가지만, 문제 해결은커녕 전국으로 확산되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경기 안산과 평택, 충북 청주와 강원 춘천에서도 붉은 수돗물에 관한 민원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도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인천시는 정확히 문제를 분석해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수돗물 공급시설에 대한 정기점검 과정에서 흔히 있는 사고로 붉은 수돗물의 원인은 수도관에 쌓여 있던 침전물이 일시적으로 흘러나온 것”일 뿐이라는 안일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환경 주무 부처인 환경부까지도 녹슨 수도관 자체에 대한 근본 원인을 지적하기보다는 무리한 관로 변경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진단하는 우를 범했다.

하지만 이런 사태가 열흘 이상 지속되자 물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문제 발생의 근본 원인을 지엽적인 데서 찾지 말고 더 종합적인 시각에서 살펴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취수원에서 시작해 정수장을 거쳐 가정에 공급되는 전 과정에 걸쳐 수도관 망관리 시스템에 미비한 점이 없었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해 문제를 정의해야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 강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이번 붉은 수돗물 사태를 야기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수도관으로서의 수명을 거의 다한 노후관의 존재다. 2018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서울시 상수관로 총 1만 3510㎞ 중 사용 연수가 30년이 경과된 상수관로는 2234㎞로 전체의 16.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의 41년 이상 된 노후 관로 149.7㎞ 중 12.2%에 해당하는 18.2㎞가 영등포구에 있어 그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현상은 지방으로 갈수록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수도관은 거의 대부분 녹과 같은 부식에 취약한 주철관(33.1%)이 선호되고 있어 적수(붉은 수돗물) 예방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으로는 노후관 교체 시 단가가 비싸더라도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만큼 부식에 강한 시멘트라이닝을 입힌 덕타일주철관이 사용돼야 할 것이다.

둘째, 선진국에서는 지리정보 시스템에 의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취수원부터 가정의 수도꼭지까지 실시간으로 과학적 망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해당 지역 수도관의 전면 교체가 아니라 문제가 있는 수도관에 대해서만 부분 교체를 함으로써 상당한 예산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수도관은 설치 위치, 수온, 유속, 방향, 청소관리 등에 따라 수명 연한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물관리 정보가 전무하다 보니 천편일률적으로 기간만 경과하면 무조건 교체를 단행해 엄청난 예산 낭비를 초래하는 면이 적잖은 것도 사실이다. 2015년에 파주시가 수자원공사와 수질 개선 및 수질정보 제공을 위해 스마트워터시티 시범사업을 추진했지만 타 지자체로의 확산은 미미한 실정이다.

셋째, 거의 모든 지자체가 명칭만 상수도본부일 뿐 수도직렬을 1989년에 폐지해 버림으로써 수도행정은 선진화는커녕 후진적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단적인 예가 이번 인천 공촌정수장의 미흡한 대응이다. 정수장으로 취수원의 붉은 물이 들어왔다면 당연히 그 상태를 확인하고 가정으로 보냈어야 했는데 그런 절차 없이 수돗물을 공급함으로써 이번 사태를 야기했던 것이다. 차제에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수도직렬의 부활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만 한다.

끝으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제는 개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시설물 자산관리 패러다임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저출산·저성장 경제에서 정책의 방점은 사회기반시설의 유지와 재구축에 놓여야 한다. 이를 위한 안정적 재정 확보가 중요한데 지금처럼 일반회계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특정 사업의 재정 운용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회전기금 제도의 도입을 차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인체의 70%를 점하는 물은 바로 생명이기 때문에 이런 생명안전 인프라의 효과성을 제고하려면 지자체와 환경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를 통해 기술, 인력, 재정 측면에서 획기적인 제도 혁신을 국민에게 제시할 때 비로소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2019-08-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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