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도매법인 ‘대아청과’ 인수한 호반, 공적 역할 팽개친 채 배당금 잔치·먹튀 우려

입력 : ㅣ 수정 : 2019-07-3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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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료만 챙기는 유통 단계 하나 더 는 셈
전문가 “대기업, 도매법인 소유 제한해야”
호반건설 “창업·혁신 등 사회공헌 강화”
23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대아청과 건물 곳곳에 ‘중도매인 외면하는 호반과는 거래약정 못하겠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호반건설그룹이 대아청과 인수를 발표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농민·중도매인과 향후 법인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하지 않자 중도매인들은 매년 대아청과와 맺었던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특별취재팀 hobanjeb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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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대아청과 건물 곳곳에 ‘중도매인 외면하는 호반과는 거래약정 못하겠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호반건설그룹이 대아청과 인수를 발표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농민·중도매인과 향후 법인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하지 않자 중도매인들은 매년 대아청과와 맺었던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특별취재팀 hobanjebo@seoul.co.kr

호반건설그룹이 지난달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시장 도매법인 대아청과를 인수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농산물 유통 선진화 등 공영시장 도매법인의 공적 역할은 뒷전으로 팽개친 채 수수료로 번 돈을 배당금 잔치로 총수 일가에 몰아주거나 ‘먹튀’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농수산물 도매법인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준식 대아청과 중도매인 부조합장은 23일 “호반건설그룹이 인수함으로써 가만히 앉아 수수료만 챙기는 농산물 유통 단계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라면서 “농협이나 가락시장을 관리하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대아청과를 인수해 수수료를 낮추고 유통 단계를 줄였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대아청과는 경매 대금에서 법인이 떼는 위탁수수료율이 7%다. 5%가량인 농협 등 가락시장의 다른 5개 도매법인보다 높다. 대아청과가 주로 거래하는 무와 배추가 다른 과일 및 채소보다 부피 대비 가격이 낮아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에서 정한 최고 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수료 수입만 200억원에 이르고, 당기순이익도 29억원이나 된다. 배당금 잔치를 한다면 연간 수십억원씩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부조합장은 “대아청과를 대기업이 아닌 농협 등이 소유하면 수수료가 낮아질 가능성이 충분하고 소비자도 싼값에 농산물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도 호반그룹의 대아청과 인수에 부정적이다. 공사 관계자는 “수익을 극대화해 이를 모두 주주에게 배당하거나 단기간에 (법인을) 재매각하는 게 대기업의 목적”이라면서 “도매법인 운영 취지에 어긋나 공사도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비슷한 사례도 있었다. 6대 도매법인 중 하나인 동화청과가 2015년 사모펀드 칸서스자산운영에 팔렸다. 칸서스는 당시 540억원에 법인을 인수해 1년 뒤 한일시멘트에 600억원을 받고 되팔았다. 동화청과는 올해 또다시 신라교역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매각 대금은 771억원에 이른다. 4년 새 주인이 세 번 바뀌고 이 과정에서 ‘몸값’이 231억원이나 급등했다. 농산물 도매법인이 투기 대상으로 전락한 셈이다. 또 다른 공사 관계자는 “칸서스가 동화청과를 인수하려고 할 때 공사에서 승인을 안 해줬는데 칸서스가 소송을 걸었고 공사가 패소해 어쩔 수 없이 승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농안법에서는 대기업이나 사모펀드가 농산물 도매법인을 인수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조항이 없어 상법에 따라 정상적인 주식 매매를 할 경우 저지할 방법이 없다.

호반건설그룹의 계열사들인 호반프라퍼티(옛 호반베르디움)와 호반건설은 지난달 각각 대아청과 지분의 51%와 49%를 취득했다. 김상열(58) 회장의 장녀인 김윤혜(28) 아브뉴프랑 마케팅실장은 호반프라퍼티 지분 30.97%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대아청과가 호반건설그룹에 넘어가면서 농협을 뺀 5개 도매법인의 주인 모두 농업과는 무관한 업체가 됐다. 한국청과는 사모펀드인 더코리아홀딩스, 서울청과는 철강업체인 고려제강 소유다. 중앙청과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친형인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이 갖고 있다. 동화청과를 인수한 신라교역은 원양어업 회사다.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식품·유통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대기업의 농산물 도매법인 소유를 제한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호반건설그룹은 “농수산 관련 창업 지원과 유통 및 기술 혁신 관련 투자 펀드 설립을 검토하는 등 도매법인의 사회 공헌 활동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hobanjeb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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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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