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원자력] 파도를 타며 질주하는 양성자/당정증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

입력 : ㅣ 수정 : 2019-07-2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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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증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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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정증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

무더운 여름, 파도를 타고 있는 서퍼들을 보면 직업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도를 타고 질주하는 미립자를 떠올리곤 한다. ‘가속기’란 장치 안에서 전자기파라는 파도를 타고 질주하는 입자들 말이다. 일반인에게 가속기는 몹시 낯선 장치이다. 그래서 입자들이 파도를 타는 가속기가 첨단 산업기술 개발과 기초과학 연구에 필수적이며 실생활에도 활용된다고 말하면 모두 놀라곤 한다.

가속기는 입자를 가속시켜 충돌시키는 장치다. 초기의 가속기는 진공관 내부에 양(+) 전극과 음(-) 전극을 설치해 만들어 낸 전기장으로 입자를 가속하는 정전형 가속기였다. 1800년대 후반에 개발된 음극선관(CRT)도 정전형 가속기의 일종이다. 영국 물리학자 톰슨은 이 장치로 전자의 전하와 질량의 비율을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전자의 존재가 밝혀지고 이후 그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가속기를 이용해 자연의 본질을 탐구한 대표적 사례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예전 브라운관TV도 음극선관이다. 20여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가속기 한 대씩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필자는 어릴 적 브라운관TV 표면에 자석을 갖다 대 화면을 일그러뜨리는 장난을 치다가 부모님께 혼났던 기억이 있다.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다면 어릴 때부터 이미 가속기를 이용해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는 실험을 해 본 셈이다.

정전형 가속기보다 더 빠른 입자를 만들기 위해 개발된 것이 고주파 가속기다. 두 개의 전극에 고주파 전류를 흘려 보내면 두 전극 사이의 전기장도 고주파에 맞춰 진동해 전자기파가 만들어진다. 이 전자기파에 입자를 실으면 입자는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고주기파 가속기 내부를 질주하게 된다.

속이 빈 원통형으로 만든 전극들을 연달아 배치하면 어떻게 될까. 파도를 연달아 만나는 서퍼처럼 입자는 원통형 전극들을 통과하면서 계속 에너지를 얻어 점점 더 빨리 달리게 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경주 양성자가속기는 고주파 가속기로서 수소 원자의 핵인 양성자를 초속 13만㎞까지 가속시킬 수 있다.

2013년에 만들어진 경주 양성자가속기는 생명공학, IT, 우주산업 소재 개발, 핵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고(高)에너지 방사선 이용 연구 및 의료용 동위원소 생산에도 이용된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도 가속기 안에서 파도를 타고 질주하는 양성자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9-07-2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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