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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사스’가 뭐길래… 이란 영국 유조선 맞대응 나포

‘키사스’가 뭐길래… 이란 영국 유조선 맞대응 나포

이기철 기자
이기철 기자
입력 2019-07-22 15:13
업데이트 2019-07-2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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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류 英 유조선’ 주변서 순찰하는 이란 혁명수비대
‘억류 英 유조선’ 주변서 순찰하는 이란 혁명수비대 이란에 나포된 영국 국적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가 21일(현지시간) 이란 남부의 항구도시 반다르 아바스 연안에 정박한 가운데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보트가 유조선 주변에서 순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일 영국령 지브롤터 당국이 시리아로 원유를 판매한다며 이란 유조선을 나포하자 이란 혁명수비대는 지난 19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스테나 임페로 호 억류로 맞대응했다.연합뉴스
이란이 자국 유조선이 영국에 억류된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를 나포하면서 이란의 서방에 대응하는 방식이 같은 크기의 피해로 되갚음하는 ‘키사스(Qisas)’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키사스는 이슬람의 형벌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같은 방법으로 보복을 가하는 율법을 말한다. 꾸란과 마호메트의 언행록인 하디스에도 나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맞대응 보복이 대표적인데 함무라비 법전에 처음 나온다.
함무라비 법전 돌비석.
함무라비 법전 돌비석.
이란 최정예 부대인 혁명수비대는 22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를 선원 23명과 같이 나포해 억류하고 있다. 이란의 지난 19일 나포 행위는 영국령 지브롤터 당국이 지난 4일 유럽연합(EU)의 제재를 어기고 시리아에 원유를 공급하다 붙잡힌 이란 유조선 그레이스 1호에 대해 1개월 동안 억류를 연장하겠다고 밝힌 직후 나와 이란의 맞대응으로 보인다.

혁명수비대는 영국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으로 진입하면서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끄고, 다른 선박의 안전을 위협했다고 나포 배경을 설명했다. 또 이란 어선을 충돌했는데도 구조 요청에 응하지 않고 항해를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토비아스 엘우드 영국 국방차관은 이에 대해 “적대 행위”라고 비난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22일 긴급 각료들을 소집, 안보대책회의(COBR·비상대책회의실 미팅)를 주재했다. 또 프랑스와 독일 등 주변국들에 유조선 나포 관련 협조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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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서방 최근 충돌 일지
이란과 서방 최근 충돌 일지
앞서 미국이 지난해 5월 이란과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자 이란은 1년간 전력적 인내를 가지며 유럽과 핵합의를 유지하는 방법을 협상했다. 그러나 유럽은 정치적으로는 핵합의를 지키겠다고 했으나 미국의 제재를 피하려고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고 이란에 대한 투자도 끊었다. 이에 이란은 미국의 탈퇴 1주년이 된 올해 5월 8일 핵합의에서 약속한 핵프로그램 제한을 일부 지키지 않겠다고 맞대응했다.

이란은 그러나 미국처럼 단번에 핵합의를 탈퇴하지는 않고 유럽과 계속 협상한다며 60일 주기로 단계적 이행 축소로 결정했다. 5월 8일부터 60일간 1단계 조처로 핵합의에서 정한 저농축 우라늄과 중수의 저장 한도를 넘겼고, 7월7일부터 2단계 조처로 우라늄의 농축도 제한(3.67%)을 초과해 4.5%까지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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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19일(현지시간) 걸프 해역 입구 호르무즈 해협에서 억류한 영국 국적의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 촬영 날짜?장소 미상. 선주인 해운사 스테나벌크는 “이날 호르무즈 해협 공해를 항해 중인 스테나 임페로호에 미확인 소형 쾌속정들과 헬리콥터 1대가 접근했다”며 “이 배에는 선원 23명이 탔다”고 확인했다.연합뉴스
이란이 19일(현지시간) 걸프 해역 입구 호르무즈 해협에서 억류한 영국 국적의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 촬영 날짜?장소 미상. 선주인 해운사 스테나벌크는 “이날 호르무즈 해협 공해를 항해 중인 스테나 임페로호에 미확인 소형 쾌속정들과 헬리콥터 1대가 접근했다”며 “이 배에는 선원 23명이 탔다”고 확인했다.연합뉴스
그러면서 ‘행동대 행동’ 원칙을 이런 핵합의 이행 감축의 근거로 들었다. 핵합의는 서방이 대이란 경제 제재를 풀면 이란도 핵프로그램을 축소·동결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즉 상대방이 이를 어기면 자신의 의무도 이행할 이유가 없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원칙은 핵합의 36조에 명문화됐고, 이란은 이 조항을 이행 축소의 합법적 명분으로 제시했다. 핵합의가 다자 간 합의인 데다 유럽이 일단 말로는 이를 지키겠다고 했기 때문에 이란도 유럽처럼 완전히 발을 빼지는 않고 준수와 탈퇴 사이의 중간 지대로 무게 중심을 옮긴 셈이다.

이란은 동시에 핵합의를 완전히 탈퇴하면 서방의 제재가 복원돼 경제난이 심화할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서방과 이란의 주고받기식 대응이 최근 더욱 두드러졌다. 가해자에게 피해자와 똑같은 크기의 형벌을 가하는 키사스 대응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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