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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함께 자원입대한 고향 후배… 48년 만에 비석으로 만나”

“어린 시절 함께 자원입대한 고향 후배… 48년 만에 비석으로 만나”

입력 2019-06-26 17:32
업데이트 2019-06-2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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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24회

아래의 글은 6·25 전사 인천학생 조순범의 동네 선배 형인 이경종이 전사한 고향 후배 고(故) 조순범을 추모하며 서해문화 1998년 12월호에 기고했던 글이다. 고 조순범은 전사하였기 때문에 아래의 글로 조순범 참전기를 대신한다.
인천에서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자원입대하여 참전한 인천지역 1~3학년 중학생들이 대구남산국민학교에서 통신병 교육을 받고 찍은 기념사진(빨간 원 안이 조순범). 1951년 3월 31일 촬영.
인천에서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자원입대하여 참전한 인천지역 1~3학년 중학생들이 대구남산국민학교에서 통신병 교육을 받고 찍은 기념사진(빨간 원 안이 조순범). 1951년 3월 31일 촬영.
송림동에서 같이 자란 동네 후배 조순범과 나

조순범은 인천 동구 송림동 333번지에서 태어나서 6·25사변 때 인천해성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6·25 참전 인천학생 이경종)는 송림동 333번지에서 살았고 조순범은 송림동 334번지에서 살았다.

인민의용군에 끌려가서 실종된 청소년들

1950년 6월 25일 6·25사변이 터지고 악몽과도 같았던 인민군 치하에서 지옥보다도 더한 고통을 견디고 9·15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민군 치하에서 벗어났다.

인민군 치하에서 많은 중학생 또래의 청소년들이 인민의용군에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나는 매부가 살고 있던 용유도로 피난 가서 몰래 숨어 있었다. 그래서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는 것을 피했지만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간 인천 지역 청소년들은 대부분 실종되었다.

인천학도의용대 해성지대

9·15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천이 수복되었고, 차차 안정을 되찾아갈 무렵인 1950년 10월 초에 인천학도의용대가 창립되어 호국활동을 하면서 우리 송림동에는 인천학도의용대 해성지대가 생겼고, 동네 후배인 조순범과 나는 해성지대에 들어가서 호국활동을 같이 하였다.

중공군의 참전과 인천학도의용대의 남하

1950년 11월이 되자 우리 국군과 UN군은 압록강까지 북진했으나 만주 지역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1950년 12월에는 우리 국군과 UN군은 후퇴하였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가 인천 병사구 사령부(현재의 병무청)에서 파견을 나온 국민방위군 소위를 따라서 경상남도 통영충렬국민학교에 있었던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를 최종 목적지로 하여 인천축현국민학교에서 떠날 때, 나와 조순범도 같이 걸어서 남하하였다.

조순범과 함께 18일간 걸어서 도착한 마산

조순범과 나는 함께 출발하여 첫날은 안양역에서 자고 그다음 날은 수원역에서 하룻밤을 자고, 대전에 도착했을 때는 1950년 12월 24일이었다. 조순범과 나는 계속 걸어서 같이 내려갔는데 대구를 지나서 경산, 청도, 밀양, 삼랑진을 지나서 마산에 도착한 것은 인천을 떠난 지 18일만인 1951년 1월 4일이었다.

조순범과 나는 추운 겨울 함께 걸어서 내려갔는데 추풍령 고개를 지나면서부터는 추운 겨울 날씨에 제대로 된 방한복 없이 남하하는 국민방위군을 행렬을 많이 봤다. 국민방위군들은 제대로 먹지 못하여서 굶거나 얼어 죽은 경우가 많았고 겨울 황량한 논밭에 제대로 묻지도 못해서 내팽개쳐 있는 국민방위군 시체를 많이 봤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 입소

조순범과 나는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고 경상남도 통영의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통영충렬국민학교)로 들어가지 않고 마산에서 해병 6기 모집 광고를 보고 둘이 같이 지원했는데 둘 다 탈락하였다.

인천학도의용대 이계송 대장의 인도하에 조순범과 나는 마산항에서 함께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1951년 1월 10일 부산 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자원입대하였다.

1~3학년 중학생들이 입대할 수 있었던 이유

이 당시 훈련소에 입소하는 징집군인 중에는 문맹자가 많았다. 그래서 훈련소에서 훈련하기 전에 문맹자를 위해서 기본적인 문자 교육을 해야만 했다. 미군이 주는 각종 무기가 영어로 표기되어 있고 명령서나 무기 사용 안내서 등 공문서를 읽어야 하므로 문맹자는 국군의 큰 골칫거리였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영어와 한자까지도 아는 중학교 1~3학년 중학생들을 행정 요원으로라도 쓰기 위해서 입대를 받아줬다.

1951년 1월 31일 조순범과 헤어지다

부산 육군 제2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조순범과 나는 1951년 1월 31일 헤어졌다.

조순범은 동대신동에 있었던 부산육군통신학교로 가게 되었고 나는 공병학교로 가서 공병이 되었다. 그 뒤로 군 복무 중에는 조순범을 만나지 못했다. 또한 나는 제대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조순범의 소식은 그 후 전혀 듣지도 못했고 48년간 나는 만나 본 적도 없었다.

47년 만에야 알게 된 조순범의 전사

1996년 7월 15일부터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역사 발굴을 큰아들(이규원 치과원장)의 도움으로 시작했는데, 1997년 9월 15일 6·25 참전 인천학생 변광선(인천상업중학교 4학년 재학 중 해병 6기로 입대)선배가 제공한 자료를 보고 조순범의 전사를 알게 되었다.
1998년 4월 26일 조순범 묘를 참배하는 이경종(큰아들 이규원 촬영)
1998년 4월 26일 조순범 묘를 참배하는 이경종(큰아들 이규원 촬영)
48년 만에 비석으로 만난 고향 후배 조순범

인천상업중학교 변광선 선배님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를 통하여 조순범의 전사를 알게 된 나는 1998년 4월 26일 아침에 동작동 국립묘지를 큰아들 이규원(치과원장)과 함께 찾아갔다.

전사한 후배여! 참전역사 찾기를 도와다오!

나는 조순범 무덤 앞에 앉아서 “48년 전 인천에서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함께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여 너는 전쟁터에서 죽고 나는 참전하고 살아 돌아와 여기서 만나게 되었구나! 채 피지도 못하고 전쟁터에서 죽어간 너의 기록을 남기려고 48년 만에 이렇게 찾아왔다”라고 조순범에게 말하였다.

또한 잠들어 있는 조순범에게 나는 “넋이 있다면 부디 편안한 잠들기 바라며 나와 큰아들 이규원(치과원장)이 하고 있는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 역사 찾기 사업을 도와다오!”라고 말했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다.

글 사진 인천학생 6·25참전관 제공

■참전기 24회를 마치며

한때 인천에 중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징병모집에 대하여 한참이나 어려서 입대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중학생이었습니다.

저의 아버지 또한 중학교 3학년 16살이어서 인민군에 끌려갈 나이지, 국군에 입대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나이였습니다.

조순범은 저의 아버지보다도 2살이나 어린 14살 인천해성중학교 1학년생으로 저의 아버지께서 사시던 동구 송림동 같은 동네에 사는 동네 후배였습니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한 조순범은 부산까지 저의 아버지를 따라 함께 내려가서, 1951년 1월 10일 부산 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같이 입소하였습니다.

1951년 1월 31일 헤어졌던 운명의 날, 조순범은 육군통신학교로 갔고 저의 아버지는 공병학교로 가셨습니다.

1951년 1월 31일 조순범과 헤어져 다시는 소식을 모르고 지내시다가 48년 만에 동작동 국립묘지에 누워있는 동네 후배 조순범을 만나고서 아버지께서 비석을 어루만지시며 구슬프게 우시는 모습을 저는 지켜봤습니다.

이규원 인천학생 6·25 참전관 관장
故 조순범(인천학도의용대 해성지대 소속)
故 조순범(인천학도의용대 해성지대 소속) 조순범은14살 때 참전해 15살 때 전사했다.
故 조순범

1936년 10월 22일 : 인천 동구 송림동 334. 출생

1950년 12월 18일 : 인천해성중학교 1학년때 인천에서 출발하여 부산까지 30일간 걸어서 남하

1950년 12월 24일 : 대전역 도착

1950년 1월 4일 : 마산역 도착

1951년 1월 10일 : 부산 육군 제2 훈련소 입소

1951년 1월 31일 : 부산육군통신학교 입교

통신병 군번 0243077

1951년 12월 1일 : 동부전선에서 전사(戰死)

묘지 위치 : 동작동 국립묘지 동-08-31891
인천학생 6·25 참전관 전경 (중구 용동 178)
인천학생 6·25 참전관 전경 (중구 용동 178) 관람 안내 : 평일 10시~17시, 토요일 10시~15시
공휴일·일요일은 휴관합니다. ☎ 032-766-7757
하늘땅처럼 오래갈 겨레는 끝없는 충성을 나라에 바치고,

자손만대를 이어갈 집안은 먼저 어버이께 효도를 다 하고,

여기 오가는 바람이여 이 뜻을 모두에게 전하라! -충렬사-
2019-06-27 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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