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어선, 삼척항서 날 밝기 기다려 ‘기획 귀순’… 2명은 작정하고 왔다

입력 : ㅣ 수정 : 2019-06-20 00:51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軍 경계 허문 ‘北어선 귀순’ 전말
NLL 북방서 위장 조업 중 야간 틈타 남하
2명은 방파제 정박 후 육상서 구조 대기
軍, 3일간 동해 떠도는 어선 파악 못해


“가정 불화·한국영화 시청 처벌 겁나 탈북”
육군·해경 카메라에 찍힌 입항마저 몰라
“GPS 분석 결과 어로 활동 한 건 맞는 듯
당시 복장과 관계없이 4명 모두 민간인”
지난 15일 북한 주민 4명이 승선한 목선이 해군과 육군, 해경의 3중 감시망을 뚫고 강원 삼척항에 접안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사진은 해경 경비정에 의해 예인되는 북한 목선(원안) 모습.   삼척 연합뉴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지난 15일 북한 주민 4명이 승선한 목선이 해군과 육군, 해경의 3중 감시망을 뚫고 강원 삼척항에 접안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사진은 해경 경비정에 의해 예인되는 북한 목선(원안) 모습.
삼척 연합뉴스

지난 15일 북한 어선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하한 사건은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우리 군의 경계태세가 허물어졌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9일 관계기관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 9일 함경북도 집삼 포구에서 출항했다. 군 관계자는 “당시 어선에 탑승한 북한 인원 4명 중 2명은 최초부터 귀순 의도를 갖고 출발한 것으로 1차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다음날인 10일 NLL 북방 어선군에 합류해 11일부터 12일까지 위장 조업을 한 뒤 오후 9시 야간을 틈타 NLL을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어 13일 오후 8시 울릉도 동북방 약 30노티클마일 해상에서 기상 악화로 엔진을 일시 정지했다. 기상 상황이 나아지자 최단거리 육지를 목표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5일 오전 6시 22분 자체 동력으로 삼척항 방파제에 들어와 배를 밧줄로 정박시킨 후 해가 뜰 때까지 구조를 기다렸다.
‘해상경계 실패’ 이진성 8군단장이 19일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지휘관회의에서 정경두 국방장관의 모두발언을 받아 적는 모습. 이 군단장 수첩에 ‘해상경계작전 실패’(빨간 점선)라고 적혀 있다. 오장환 기자 hojeong@seoul.co.kr

▲ ‘해상경계 실패’
이진성 8군단장이 19일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지휘관회의에서 정경두 국방장관의 모두발언을 받아 적는 모습. 이 군단장 수첩에 ‘해상경계작전 실패’(빨간 점선)라고 적혀 있다.
오장환 기자 hojeong@seoul.co.kr

오전 6시 50분쯤 산책을 나온 주민이 112에 최초로 신고했다. 이후 112에서 동해 해양경찰청으로 신고해 오전 7시 35분부터 해경 경비정이 북한 어선을 동해항으로 예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개된 북한 선원들의 폐쇄회로(CC)TV 영상과 사진, 주민 증언 등에 따르면 이들은 삼척항에서 흰색 홋줄(정박용 밧줄)을 배 앞부분과 방파제 벽에 직접 묶어 정박했다. 배 안에는 옷가지를 담아 놓은 듯한 여러 개의 봉지와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도구들도 보였다.

한 명은 인민복 차림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얼룩무늬 전투복, 나머지 두 명은 작업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선원 4명 중 2명은 배를 정박하는 과정에서 방파제 위로 걸어 올라왔다.

이 과정에서 한 선원을 발견한 주민이 어디서 왔는지를 묻자 “북한에서 왔다”며 “서울에 사는 이모와 통화할 수 있게 휴대폰을 빌려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탈북한 사람과 접촉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국가정보원은 이혜훈 정보위원장에게 “귀순

을 한 2명 중 선장 남모씨는 가정불화, 선원 김모씨는 한국 영화를 시청한 혐의로 처벌을 두려워해 탈북을 결심했다”며 “나머지 두 명은 선장을 따라 휩쓸려 왔다”고 보고했다. 송환확인서 작성 과정에서 모두 귀순 의사를 표시했지만 남씨와 김씨가 ‘북으로 가면 죽거나 교화소에 간다’며 귀순 의사를 표명했다”고 이 위원장은 전했다.

국정원은 또한 “국과수에 (목선의) GPS 분석을 의뢰한 결과 북한 선원들이 어로 활동을 했던 것은 맞는 것 같다”며 “일몰 시간을 제외한 항해 거리 등을 고려하면 해당 목선은 열심히 달려오는 것 외에 다른 활동을 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해당 인원 4명은 모두 당시 복장과 관계없이 민간인으로 1차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이 방파제에 접안해 육상으로 올라오기까지 군과 해경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해양경계 작전에 심각한 구멍이 뚫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된다. 조사 결과 육군의 IVS(지능형 영상감시카메라)와 해경 CCTV에도 이들의 입항 모습이 나타나 있었지만 군과 해경은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동해상에는 평상시보다 더 많은 해양 감시 자산이 운용되고 있었음에도 북한 어선을 발견하지 못해 총체적 무능을 보여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군은 당시 동해 NLL 인근에 해군 군함 수척과 해상초계기(P3), 해상작전헬기 등 평소보다 많은 감시 자산을 운용해 작전활동을 하고 있었다.

합참은 “군은 북한 해역에 400여척의 어선이 활동 중인 것을 인지하고 평소보다 조밀하게 감시 능력을 증강해 활동해 왔다”며 “그럼에도 동해상이 워낙 넓은 지역이어서 감시 정찰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고 안규백(더불어민주당) 국회 국방위원장에게 보고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2019-06-20 5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블로그

서울Eye - 포토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