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泰·中까지… 30년 아시아 투쟁 이끈 ‘임을 위한 행진곡’

입력 : ㅣ 수정 : 2019-06-1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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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투쟁가, 亞 시위서 울린 배경
1987년 6월 항쟁·노동자투쟁서 민중화
亞 국가, 韓 경제성장만큼 노동운동 관심
사회운동가들 교류로 자연스레 세계화

홍콩, 1984년 ‘애적정전’으로 최초 번안
캄보디아·말레이 등 각국 경험 담아 불러
“자랑스러운 수출품으로 보는 건 부적절”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의 완전 철폐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200만명의 홍콩 시민들이 홍콩의 거리를 가득 메우며 ‘검은 대행진’을 벌인 다음날인 17일 한 시민이 ‘쏘지 마세요, 우리는 홍콩 사람입니다’라는 내용의 푯말을 들고서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는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하고 있다. 홍콩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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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의 완전 철폐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200만명의 홍콩 시민들이 홍콩의 거리를 가득 메우며 ‘검은 대행진’을 벌인 다음날인 17일 한 시민이 ‘쏘지 마세요, 우리는 홍콩 사람입니다’라는 내용의 푯말을 들고서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는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하고 있다.
홍콩 AFP 연합뉴스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분노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홍콩 시민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케이팝이 한류를 타고 수출됐듯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노래가 수출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노래가 지난 20~30년 아시아 여러 국가의 투쟁 현장 등에서 번안돼 불려왔다고 전했다. 국경을 뛰어 넘는 ‘아시아의 인터내셔널가(歌)’가 된 지 오래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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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대 정근식 교수의 논문 ‘임을 위한 행진곡-1980년대 비판적 감성의 대전환’(2015)에 따르면 1987년 6월 항쟁과 대규모 노동자 투쟁 과정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전국화를 넘어 세계화·민중화되는 과정이었다. 아시아 국가 대부분은 한국의 성공적인 경제 성장뿐 아니라 민주화에 주목했다. 특히 노동 운동과 한국의 문화 운동은 아시아의 많은 사회운동가, 특히 노동운동가들에게 중요한 관심사였다.

아시아 중에서 가장 빨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워 간 나라는 홍콩이다. 정 교수는 “1980년대 홍콩은 동아시아 사회운동 교류의 중심이었다”면서 “1982년 홍콩기독학생회 학생대표인 안젤라 윙이 노래를 배워가 2년 후 광둥어로 번역해 노래를 알렸다”고 말했다. 당시 번역된 한자어 제목은 ‘애적정전’(March for love)이었다. 1988년 대만 타오친공회 간부 커정룽이 한국 노동운동을 공부하려고 방한했다가 마산공장 파업 현장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듣고 대만으로 돌아가 중국어 가사를 붙여 ‘노동자 전가(戰歌)’라는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는 이 노래가 강제퇴거에 반대하는 주민운동 현장에서 불려졌고 말레이시아에서는 말레이어와 중국어로 번안돼 노동운동가로 제창됐다. 태국에서도 태국어 가사를 붙여 ‘연대’라는 노래로 불리고 있다. 2002년에 결성된 중국의 신노동자예술단은 ‘노동자 찬가’라는 제목의 음원으로 만들었고, 2012년 새해맞이 행사에서 불렀다. 실제 노동운동 연대 활동 중 실종된 중국 대학생들과 교류해온 이우연(가명)씨는 “중국 대학생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알고 있어서 신기했다”면서 “중화권에서는 상징적 노래로 삼아 불렀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영미 문화평론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조로 단순한 기초화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선율은 편안하게 오르내리는 방식”이라면서 “서양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아시아권에서는 비교적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음악적 조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는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는 대만에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는 쪽으로 번안되고, 중국으로 넘어가서는 농민공들의 존엄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바뀐다”면서 “한국 민주화 과정을 그대로 이행한 자랑스러운 수출품으로 느끼는 자부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2019-06-1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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