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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여성의 공포, 일상 속 범죄…“내 안전 운에 맡겨야 하나”

혼자 사는 여성의 공포, 일상 속 범죄…“내 안전 운에 맡겨야 하나”

오세진 기자
입력 2019-05-30 17:20
업데이트 2019-05-31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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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不·on)한 회의] 안전책임 언제까지 여성에게 지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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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귀가하던 한 여성을 따라가 주거침입을 시도하려던 남성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일명 ‘신림동 주거침입 사건’ 속 위험에 노출된 여성의 모습은 2016년 5월 일어난 ‘강남역 살인 사건’을 떠오르게 했다.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 건물 화장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통해 여성이 갖는 일상의 공포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은 강남역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 모습. 연합뉴스
최근 귀가하던 한 여성을 따라가 주거침입을 시도하려던 남성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일명 ‘신림동 주거침입 사건’ 속 위험에 노출된 여성의 모습은 2016년 5월 일어난 ‘강남역 살인 사건’을 떠오르게 했다.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 건물 화장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통해 여성이 갖는 일상의 공포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은 강남역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 모습.
연합뉴스
지난 17일은 ‘강남역 살인 사건’ 3주기였습니다. 2016년 5월 17일 한 남성이 서울 지하철 강남역 인근 건물 화장실에 들어오는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겁니다. 이 사건은 사회를, 특히 여성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습니다. 이 사건 후 3년이 지났지만 여성들의 공포는 여전합니다. 지난 2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원룸으로 귀가하던 여성을 따라간 한 남성의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되면서 공포감을 증폭시켰습니다. 이 영상을 본 많은 누리꾼들은 ‘1초만 늦었으면 성범죄가 발생할 뻔했다’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과 비슷한 일을 많은 여성들이 겪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특히 혼자 사는 여성일수록 일상에서 공포를 경험하는 일이 많습니다. 안전한 삶, 과연 여성들이 알아서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불온한 회의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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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귀가하던 한 여성을 따라가 주거침입을 시도하려던 남성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사진)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일명 ‘신림동 주거침입 사건’ 속 위험에 노출된 여성의 모습은 2016년 5월 일어난 ‘강남역 살인 사건’을 떠오르게 했다.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 건물 화장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통해 여성이 갖는 일상의 공포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은 달라지지 않았다. 유튜브 캡처
최근 귀가하던 한 여성을 따라가 주거침입을 시도하려던 남성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사진)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일명 ‘신림동 주거침입 사건’ 속 위험에 노출된 여성의 모습은 2016년 5월 일어난 ‘강남역 살인 사건’을 떠오르게 했다.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 건물 화장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통해 여성이 갖는 일상의 공포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은 달라지지 않았다.
유튜브 캡처
부장:‘신림동 주거침입 사건’ 영상에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들도 “소름끼쳤다”는 반응이 많더군. ‘신림동 강간미수’로 불리지만, 명확한 표현은 일단 ‘주거침입’이 맞겠지. 이런 두려운 경험이 있었을까.

주리:21살 때 있었던 일인데요. 서울 강북 지역에 있는 복도식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어요. 평소 신문을 넣는 현관문 투입구가 종종 열려 있길래 처음엔 바람 때문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집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투입구가 갑자기 열리는 거예요. 계속 열리니까 이상하다 싶어서 방범렌즈로 현관문 밖을 바라봤는데, 한 눈동자와 마주친 거죠. 그 남자도 문밖에서 방범렌즈로 집안을 보고 있었던 거죠. 너무 무서워서 바로 112에 신고했어요.

부장:경찰은 바로 출동했고?

주리:이미 남자가 사라진 뒤라 잡지 못하고, 그냥 “투입구를 막으세요” 이러고 가더라고요. 경찰도 흐지부지 끝내니까 이후 더 심각한 상황이 됐어요. 그 남자가 집 앞 우유팩에 마구 꺾인 꽃을 넣어두거나, 제 이름과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적어 놓는가 하면, 손잡이를 잡고 흔드는 경우도 많았고. 한동안 집 밖으로 나가는 거 자체가 공포였어요. 경찰 신고를 했다가는 더 큰 봉변을 당할 거 같아서 전세기간 만료까지 6개월 동안 떨면서 버티고는 결국 집을 옮겼죠.

혜진:혼자 사는 여성이 느끼는 공포란 게 정말 실제로 겪지 않은 사람들은 잘 체감을 못하더라고요. 대학생 때 혼자 살면서 피자를 몇 번 배달시켜 먹은 적이 있는데요. 어느 날 배달원이 갑자기 저한테 ‘사귀자고 하면 거절할 거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싸늘하게 말을 못하겠는 게, 그 사람 기분을 나쁘게 하면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해코지 당할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공손한 표정과 말투로 거절 의사를 전했어요. 그 분도 그냥 웃으면서 돌아가긴 했는데, 그 뒤로 저는 배달 음식을 절대 혼자서는 시켜 먹지 않아요.

유민:예전에 친한 언니가 혼자 사는 집에서 주말을 지내본 적이 있는데 전 절대 혼자 못 살겠더라고요. 보안·방범시설이 나름 잘 갖춰져 있었고 동네도 나쁘지 않았는데, 누군가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에다 원룸이다보니 다른 방과 바짝 붙어 있어서 작은 소리에도 놀라게 되더라고요.

혜진:요즘은 CCTV가 많이 있지만, 소용 없어 보여요. 이번 사건도 CCTV가 있는데 벌어진 일이잖아요.

주리:전에는 파출소가 가까운 곳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택배함을 관리하는 경비원이 저한테 집에서 몇시에 나가서 언제 들어오는지 묻는 거예요.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다고만 말했어요. 어느 날 재택근무 중이었는데 오전 11시쯤 초인종이 여러 번 울리더라고요. 대답하지 않고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어요. 다른 잠금장치가 있어 문이 걸렸는데, 놀라서 보니 그 경비원이었어요. “문단속 점검 중이었다”고 했는데, 그 공포로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제가 집을 비웠을 때 불법 촬영 카메라를 설치했을까봐 200만원 들여서 집 전체를 싹 다 뒤진 적도 있어요.

부장:혹시 남자들도 이런 경험이?

세진:밤 늦게 귀가할 때 누가 쫓아오지는 않는지 뒤를 살펴볼 때가 있고, 집에 혼자 있을 때도 강도가 침입하지 않을까 걱정돼서 현관문 잠금장치를 모두 채우고 창문도 걸어 잠그긴 해요. 하지만 남성인 제가 느끼는 불안과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의 정도와 빈도는 완전히 다르겠죠.

진호:기본적으로 남성은 ‘내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크게 안 해요. 그럴 만한 환경에 처해 있지 않거든요. 남성이 ‘위험할 수 있겠다’고 염려하는 상황은 보통 갈취, 폭행 정도. 확실히 여성에 비해 제한적이에요.

유민:여성인 주변 친구들이 혼자 많이 사는데 항상 집을 옮길 때마다 가장 신경 쓰는 게 안전이라고 합니다. 대로변에 있고, 가급적 오피스텔이고, 직장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그런데 안전한 집을 찾자니 집값이 비싸고…. 아파트에서 사는 게 가장 좋지만 혼자 살면서 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일상 생활에서 폭력에 노출돼 있고, 안전을 위한 주거는 비용 부담이 크고, 비용을 따져 마련한 집은 안전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그야말로 삼중고네요.

혜진:그런 생각을 해요, 제가 지금까지 위험에 노출되지 않은 건 그냥 ‘기적’이라고. 혼자 오래 살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일단 혼자 살면 안 되고, 돈을 들여서라도 좋은 집에 살아야 하고, 내 안전을 운에 맡기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현용:3년 전 ‘강남역 살인 사건’이 터졌을 때 사람들이 많이 말하고, 되뇌었던 말이 생각나네요. “나는 살아남았다”는 말.

세진:이렇게 여성들이 일상에서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황인데, 이번 사건을 다룬 기사에 악질적인 댓글이 달렸더라고요. 쫓아온 남성 피의자가 ‘고백하려고 했다’라거나 CCTV에 찍힌 시간이 오전 6시대라는 걸 두고 ‘저 시간에 집에 들어가는 여성은 뭐냐’, ‘저지른 범죄가 없으니 무죄’라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깝다. 좀만 더 빨리 문 열지’라는 댓글도 있었어요. 이런 사람들과 같은 세상에 산다는 게 너무나 소름 끼칠 지경입니다.

진호:정말, 댓글이 더 아찔해요. 2004년 당시 남고생들이 저지른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이 터졌을 때도 경찰이 ‘피해자가 먼저 꼬리친 거 아니냐’는 식으로 도리어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렸잖아요?

혜진:2011년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왜 남자(가해자) 셋에 여자 한 명이 같이 MT를 가냐’면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여론도 있었어요.

세진:이번 사건이 피해자 입장에서는 자칫 성폭력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인데 남성들이 이걸 적극적인 구애 행위 또는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생각하는 게 정말 문제에요. 여전히 강간범죄는 남성들 사이에서 판타지가 되고 농담거리가 되고 있어요.

현용:대검찰청의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살인·강도·방화·성폭력 등 강력범죄로 인한 여성 피해자는 2010년 2만 930명에서 2017년 3만 490명으로 증가한 반면 남성 피해자는 같은 기간 4403명에서 3447명으로 줄었어요. 특히 강력범죄 여성 피해자 중 성폭력 피해자 비중은 2010년 85.3%에서 2017년 96.0%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에요. 성폭력 가해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에 95.4%에서 97.1%로 증가했고요. 이렇게 여성을 상대로 한 남성들의 흉악범죄가 큰 규모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심각성을 모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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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귀가하던 한 여성을 따라가 주거침입을 시도하려던 남성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일명 ‘신림동 주거침입 사건’ 속 위험에 노출된 여성의 모습은 2016년 5월 일어난 ‘강남역 살인 사건’을 떠오르게 했다.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 건물 화장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통해 여성이 갖는 일상의 공포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은 강남역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메모들.  연합뉴스
최근 귀가하던 한 여성을 따라가 주거침입을 시도하려던 남성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일명 ‘신림동 주거침입 사건’ 속 위험에 노출된 여성의 모습은 2016년 5월 일어난 ‘강남역 살인 사건’을 떠오르게 했다.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 건물 화장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통해 여성이 갖는 일상의 공포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은 강남역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메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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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저는 진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여자로 태어나서 조심해야 하는 게 너무 많고, 무서운 일이 너무 많아서.

주리:대학생 때는 늘 호주머니에 호신용품을 들고 다녔어요. 당시 호신술도 배우고 유도도 배웠는데 위험한 순간에 혼자 남자랑 맞닥뜨리면 몸이 경직돼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세진:언제까지 이런 범죄에 개인이 맞서야 하는 걸까요. 국가가 나서서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현용:CCTV도 소용없다는 말이 있지만, 범죄 예방 효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죠. CCTV가 너무 많아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도 공익적 목적을 더 크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호:셉테드(CPTED)처럼 범죄를 예방하는 환경설계도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좁은 골목이나 이면도로를 밝은색으로 포장하는 것만으로도 범죄율을 줄일 수 있거든요.

정리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19-05-31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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