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간섭이 과몰입 부를 뿐” vs “질병 등록돼도 산업엔 무풍”

입력 : ㅣ 수정 : 2019-05-2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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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 관점 전혀 다른 문체·복지부
문체부 “지나친 규제 땐 게임산업 위축”
복지부 “우울·강박증 등 진단명 치료중”
청소년 학부모 대부분 WHO 결정 반겨
시민단체 “중독 방치, 아동 학대 맞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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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분류하는 문제를 놓고 정부부처 간 혼선이 빚어지는 이유는 게임중독 문제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게임중독을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할 ‘질병’으로 보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같은 규정이 지나친 규제로 이어져 게임산업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여긴다.

앞서 문체부는 4월 초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에 게임이용장애를 포함하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보냈다. 의견서에는 문체부가 10대 청소년 2000명을 2014년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추적 조사한 ‘게임이용자 패널 조사 1~5차 연도 연구’ 내용을 담았다.

문체부는 연구 결과 청소년의 게임이용 시간과 게임과몰입(게임중독) 정도는 큰 상관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학업 스트레스나 부모의 과잉기대, 과잉간섭 등이 게임과몰입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발표했다. 조현래 문체부 콘텐츠정책국장은 “게임과몰입을 일으키는 주된 영향은 게임 자체라기보다 부모의 양육 태도와 학업 스트레스 등의 사회심리적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문체부는 복지부가 주도하는 정책협의체 대신 통계청이나 국무조정실에서 중재하는 기구에 참여해 협의에 나설 계획이다.

복지부는 ‘게임을 오래 하는 것이 게임중독’이란 명제가 되레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WHO가 규정한 게임중독 진단 기준은 ‘게임을 절제할 수 없고, 일상보다 게임에 우선순위를 두며, 부정적 결과가 발생해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상황’ 등 세 가지다. 단순히 게임을 오래 하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느라 학업과 생업까지 놓아버린 극단적 상태를 게임중독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업계는 ‘프로게이머도 게임중독이냐’라는 반박 논리를 제기하지만, 이 기준대로라면 프로게이머는 ‘중독자’로 보기 어렵다.

조근호(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과장은 “게임중독은 알코올중독과 같이 조절력이 손상돼 멈출 수 없게 된 경우를 말한다”며 “프로게이머가 자신의 일로 여기고 절제하며 게임을 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도박을 일로서 대하는 도박장의 딜러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홍정익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게임중독은 이미 우울증이나 강박증 등 다른 진단명으로 치료하고 있다. 질병코드가 도입되면 없던 공식 통계가 생겨나는 것일 뿐 게임산업에는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청소년을 키우는 부모들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구분한 WHO의 결정을 반겼다. 특히 게임에 쉽게 빠져드는 아들을 둔 부모들이 크게 환영했다. 일곱 살 아들을 키우는 한 학부모는 “딸 가진 부모들에게는 화장 문화, 아들 가진 부모들에게는 게임중독이 가장 큰 고민”이라면서 “아이가 게임에 노출되지 않도록 집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또래나 형들에게서 스마트폰 게임 등을 배워 학교 가기 전부터 시작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온라인 맘카페에는 아이의 게임중독 증상으로 고민하는 학부모들의 고충이 넘쳐난다. 고교 2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 A씨는 “가족들과의 약속도 무시한 채 게임만 해 온 가족이 아이를 기다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용중 아이건강국민연대 대표는 “이번 질병 등록을 계기로 아이가 게임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시간을 제한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중독을 방치하는 것은 아동 학대에 버금가는 책임 회피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2019-05-2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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