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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 지킨 ‘봉준호 철학’… “주90시간 드라마 관행도 변해야”

근로계약 지킨 ‘봉준호 철학’… “주90시간 드라마 관행도 변해야”

김정화 기자
입력 2019-05-27 18:04
업데이트 2019-05-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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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뒤 또 촬영 ‘디졸브 노동’ 바뀔까

봉 감독 “스태프들과 일일이 계약서 작성”
영화계와 달리 방송계 ‘살인적 노동’ 여전
표준계약서 경험, 기술 스태프는 18% 그쳐
“사전 제작 없이 생방급 촬영에 시간 허비
52시간 지켜도 기생충처럼 좋은 작품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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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봉준호(가운데) 감독이 전작인 ‘옥자’(2017)의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함께하고 있는 모습. ‘기생충’은 스태프들과 일일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며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주목받고 있다. 서울신문 DB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봉준호(가운데) 감독이 전작인 ‘옥자’(2017)의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함께하고 있는 모습. ‘기생충’은 스태프들과 일일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며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주목받고 있다. 서울신문 DB
‘주 52시간제를 지켜 가며 제작해도 명작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한 영화.’

한국영화사 100년 만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봉준호(50)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두고 각계의 찬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영화 제작 환경도 주목받고 있다. 봉 감독이 “스태프들과 일일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현장 관계자들은 “기생충이 좋은 예를 만들어낸 만큼 이번 기회에 여전히 스태프들이 과로에 시달리는 드라마 제작 현장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봉 감독은 2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을 만나 “(표준근로계약서 준수가 화제가 됐는데) ‘기생충’만 유별난 건 아니고 2~3년 전부터 영화 스태프의 급여 등은 정상적으로 정리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 영화계에서는 2014년쯤부터 영화 스태프들의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표준근로계약서에는 4대 보험 가입, 초과근무수당 지급 등이 명시돼 있다. 과거에는 제작사가 스태프와 근로계약 대신 도급계약만 맺었다. 영화계에서는 각본의 모든 장면을 그려 연기자와 스태프에게 정확한 촬영 정보를 주는 봉 감독 특유의 ‘디테일’ 덕분에 법정 노동시간을 지키는 게 쉬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불필요한 촬영 없이 효율적으로 작업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드라마 업계다. 오는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앞두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디졸브 노동’이 여전히 일상적이다. 디졸브는 두 개의 화면이 겹치는 영상기법인데, 새벽까지 일하고도 쉬지 못한 채 아침부터 다시 일하는 악습을 일컫는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에 따르면 드라마 촬영장에서는 지금도 현장 집합부터 종료까지 하루 20시간 이상 일하는 팀이 대다수다.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지난 1월 발간한 ‘2018년 방송 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드라마·예능 프로그램 제작 기간 스태프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당 80~90시간이었다. 한 스태프는 “오전 7시에 방송국 앞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강원도까지 이동한 뒤 늦은 시간까지 촬영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면 새벽 3~4시”라고 하소연했다. 김두영 방송스태프지부장은 “방송업계에서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이 관행처럼 굳어져 영화계가 실시하는 기본적인 계약 준수조차 놀랍게 여긴다”고 꼬집었다.

드라마 업계의 살인적 노동 관행이 바뀌지 않는 건 사전 제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 지부장은 “드라마는 연출, 작가, 제작사가 합의해 촬영대본을 사전에 다 짜지 않고 즉석에서 찍다 보니 촬영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난다”면서 “필요한 장면을 제대로 찍지 않아 한 장소를 두세 번씩 오가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제작사와 방송사는 노동시간을 줄이면 제작비가 많이 늘어난다고 걱정하지만, 봉 감독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철저하게 준비하면 시간과 비용을 오히려 아낄 수 있다”면서 “드라마, 예능에서도 사전 제작을 일상화하고, 방송 스태프를 위하는 현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2019-05-2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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