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진년에 진흥왕 행차”… 울진 성류굴서 명문 또 나왔다

입력 : ㅣ 수정 : 2019-05-2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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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금석문 대거 확인된 8광장서 발견
‘560년 6월 50명 보좌 받으며 배로 이동’
2.3m 높이에 가로 35㎝·세로 40㎝ 음각
문헌에 없는 내용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
“사료 가치 매우 높아…국보 지정 가능성”
울진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 내부 제8광장에서 신라 진흥왕이 다녀간 명문(기록)인 ‘경진년명’을 발견했다고 울진군이 23일 밝혔다. 명문에 따르면 진흥왕은 경진년(서기 560년) 6월에 50명의 보좌를 받으며 배를 타고 이동했다. 작은 사진은 경진년명 중 ‘경진6월일’ 부분을 확대한 모습. 울진군 제공

▲ 울진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 내부 제8광장에서 신라 진흥왕이 다녀간 명문(기록)인 ‘경진년명’을 발견했다고 울진군이 23일 밝혔다. 명문에 따르면 진흥왕은 경진년(서기 560년) 6월에 50명의 보좌를 받으며 배를 타고 이동했다. 작은 사진은 경진년명 중 ‘경진6월일’ 부분을 확대한 모습. 울진군 제공

최근 신라시대 금석문이 대거 발견된 경북 울진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에서 신라 제24대 임금 진흥왕(재위 540∼576)이 560년에 다녀갔다는 암각 명문이 새롭게 확인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암각문의 내용을 분석한 전국의 역사학 교수 5명은 기존 역사 해석을 위한 주요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울진군은 심현용 울진군 학예연구사와 신라사 전공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함께 판독한 “庚辰六月日(경진육월일)/柵作父飽(책작익부포)/女二交右伸(여이교우신)/眞興(진흥)/王擧(왕거)/世益者五十人(세익자오십인)”이라는 성류굴 명문을 23일 공개했다.

문구는 “경진년(560, 진흥왕 21년) 6월 ○일,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로 해석된다고 울진군은 설명했다. 이번에 확인된 명문은 삼국사기 등 문헌에 나오지 않는 자료로, 울진 성류굴에 신라 화랑뿐만 아니라 임금이 다녀갔으며 당대 정치·사회 변화상을 알려주는 획기적인 기록으로 평가된다. 명문이 있는 장소는 지난 3월 21일 성류굴 입구 320여m 안쪽에서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를 아우르는 국내 최초 동굴 내 각석(刻石) 명문 30여개가 무더기로 확인된 제8광장이다.

이번 명문은 지표 기준으로 약 2.3m 높이에 가로 35㎝, 세로 40㎝인 굴곡진 면에 음각했다. 글씨는 예서(고대 서체인 전서를 간략하게 만든 서체) 분위기가 있는 해서(정자체)다. 명문은 세로 6행으로 1행에 5자, 2행 5자, 3행 5자, 4행 2자, 5행 2자, 6행 6자로 모두 25자를 새겼다. 글자 크기는 가로 7∼8㎝, 세로 7∼12㎝ 정도인데 ‘眞興王擧’(진흥왕거)라는 네 글자는 다른 글씨보다 유독 크게 써서 강조했다.

심 연구사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조에는 진흥왕 20년(559)부터 22년(561)까지 기록이 비어 있다”며 “성류굴 명문은 공백기로 남은 진흥왕 대(代) 역사상을 알려주는 엄청난 자료”라고 주장했다. 심 연구사는 이어 “앞으로 울진에서 진흥왕 순수비가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며 “성류굴 신라 명문들은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에 버금가는 신라 금석문의 보고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수진들은 “진흥왕 연대와 기록자의 이름 외에도 당시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이 가득하다”면서 “국보 지정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진흥왕은 북한산과 마운령, 황초령에 순수비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 신라시대 정복 군주다.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위치한 성류굴은 1963년 5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석회동굴이다.

울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2019-05-24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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