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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엄마의 매니큐어

<기고>엄마의 매니큐어

입력 2019-05-22 10:56
업데이트 2019-05-2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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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 소장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 소장
지난달 개봉한 영화 ‘샤잠’은 슈퍼히어로가 된 15세 소년의 모험담이다. 어린 시절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위탁가정을 전전하는 소년 앞에 어느 날 마법사가 나타난다. 마법사의 도움으로 슈퍼 파워를 얻게 된 소년은 주문을 외치며 가족과 자신을 위협하는 악당을 물리친다. 뻔한 선과 악의 대결이지만, 핏줄과 관련이 없는 여러 위탁가정을 거치면서 일어나는 상황을 보며 진정한 가족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위탁가정’은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일정 기간 친부모를 대신해 아동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가정을 말한다. 이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이 위탁가정의 품에서 건강하게 성장해 친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아동복지의 한 분야이다.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친가나 다른 가정에 위탁되는 사례가 많았다. 만화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 가정에도 여동생의 아기인 희동이가 위탁됐고, 하니도 돌아가신 엄마와 해외에 근무하는 아빠를 대신해 가정위탁 된 아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강원도를 시작으로 2004년부터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가정위탁지원센터가 개소되면서 위탁가정 지원이 확산됐다. 친부모의 사정으로 친가정에서 자랄 수 없는 아동을 위탁부모와 연계하고 지원해주는 기관이 생기면서 아동을 보호하고 권리를 실현하는 데 적극적인 도움을 주게 되었다.

가정위탁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사연 중에 영은이의 ‘엄마의 매니큐어’란 수기가 기억에 남는다. 영은이는 친할머니의 가정에 위탁된 아이였다. 할머니의 꾸지람을 받으면서도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기를 고집하는 아이는 “엄마의 손톱에 발라진 매니큐어를 기억하고 만날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매니큐어를 바른다”고 했다. 매니큐어를 바르는 영은이의 행동은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담긴 다짐의 행동이었다. 당시 살펴본 수기에는 아동뿐만 아니라 위탁부모의 가슴 뭉클한 사연도 많아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느끼게 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위시로 가정과 관련이 있는 행사가 줄을 잇고 있고 가정위탁의 날도 둘이 함께하는 의미를 더해 5월 22일로 지정돼있다. 한자로 가정은 ‘집 가(家)’에 ‘뜰 정(庭)’자를 쓴다. 사전적 의미로 가정은 혈연 집단인 가족이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을 칭하지만, 이제 위탁가정처럼 다양한 구성이 많아졌다. 혈연관계를 떠나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따스하게 보듬어 주는 또 다른 형태의 가정이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가.

아동들의 피해 중에는 친부모로부터 학대당한 아동들이 종종 있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길 가정에서 학대를 당한 사례를 접하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밖에서 어려움을 겪은 아동은 부모와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치유 받을 수 있다지만, 친부모로부터 학대당한 아이들에게 가정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다. 피해 아동들은 관련시설이나 위탁가정으로 보내지게 되는데, 단체생활을 하는 시설보다 가정의 따스한 돌봄을 통해 그 상처를 치유 받고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할 곳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가정위탁의 보호를 받는 비율은 채 1%에도 못 미친다.

특히나 피해 아동과 위탁가정을 바람직하게 연계하기 위해서는 아동중심의 복지와 위탁가정의 안정적인 보육환경을 위한 관련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위탁부모를 한 경험이 있거나 사회복지사 등을 대상으로 전문위탁부모를 위한 교육과 양육에 대한 지원을 해주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일부 문제행동을 보인 아동들이 따뜻하고 세심한 보호를 받고 나서 정서적으로 안정되면서 개선된 사례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쩌다 위탁가정에서 불미스러운 사건도 발생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위탁가정에 대한 심사를 보다 엄격히 하고 지속적인 관리와 지원을 통해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함께하는 위탁부모에게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하니가 이를 악물고 달리기를 하고 영은이가 매니큐어를 바른 것처럼 엄마 아빠와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위탁아동들이 우리 주위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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