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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서라] 검찰 개혁 외치면서 검사한테 달려오는 국회의원

[법서라] 검찰 개혁 외치면서 검사한테 달려오는 국회의원

이민영 기자
이민영 기자
입력 2019-05-03 17:44
업데이트 2019-05-2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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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로 해결할 문제는 정치로 해결하길


[편집자주] 전국 최대 법원과 최대 검찰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눈으로 보는 법조계는 참 이상한 일이 많습니다. 법조의 뒷이야기와 속이야기를 풀어드리는 ‘법조기자의 서리풀 라이프’, 약칭 ‘法서라’를 토요일에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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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밀고 당기는 ‘패스트 트랙’
몸으로 밀고 당기는 ‘패스트 트랙’ 정양석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한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여당의 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제출을 저지하기위해 몸으로 막아서고 있다. 국회의장의 경호권 발동으로 국회 방호원들이 의원들을 끌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2019.4.25/뉴스1


 국회발 패스트트랙 폭력 사태가 검찰로 넘어왔습니다. 사회의 온갖 갈등이 모이는 ‘쓰레기하치장’, 법조에서 처리할 차례가 된 겁니다. 한국 사회 대부분의 사건·사고는 법원에서 최종 처리합니다. 형사 사건은 검찰이 분리수거를 한다고 봐도 되겠네요.

 여야 4당은 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고 이 과정에서 몸싸움 등 폭력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자유한국당은 너나할 것 없이 검찰에 국회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정당간 고소·고발전은 늘 있던 일이라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뉴스입니다. 고발장을 접수하러 국회의원이 서울중앙지검청사를 방문하면 기자들이 몰려갑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패스트트랙 안건 중 하나는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하고 경찰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이 포함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입니다. 검찰개혁을 하자고 이 난리인데 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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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송기헌(오른쪽 두 번째) 법률위원장과 이재정(오른쪽) 대변인 등 당직자들이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패스트트랙 지정 대치에 따른 국회 폭력 사태와 관련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등 국회의원 19명과 보좌진 2명에 대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민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오른쪽 두 번째) 법률위원장과 이재정(오른쪽) 대변인 등 당직자들이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패스트트랙 지정 대치에 따른 국회 폭력 사태와 관련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등 국회의원 19명과 보좌진 2명에 대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민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현행 형사소송법은 사법경찰이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아 수사하라고 규정했습니다. 쉽게 말해 지금도 경찰에 고발하면 경찰이 수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패스트트랙을 주도한 여당이나, 이를 반대한 자유한국당이나 모두 검찰에 수사를 해달라고 고발장을 제출한게 아이러니합니다.

 지난해 6월 정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한 이후에 정부도 검찰에 사건을 고발했습니다. 기획재정부 사무관이었던 신재민씨가 지난해 12월 청와대의 KT&G 인사 개입 의혹을 폭로하는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청와대가 정무적 이유로 기재부에 국채발행을 강요했다고 폭로하자 기재부는 신씨를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김동연 전 부총리를 고발했고요.

 비슷한 시기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었던 김태우 검찰 수사관이 특감반의 비위 의혹을 주장하자 청와대는 김 수사관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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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이 신재민 전 사무관을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협의로 검찰에 고발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민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가 KT&G 사장교체를 지시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2019.1.2  연합뉴스
2일 오후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이 신재민 전 사무관을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협의로 검찰에 고발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민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가 KT&G 사장교체를 지시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2019.1.2
연합뉴스
 여기서 잠깐, 청와대·정부·여당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하고 경찰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추진하는 주체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자기들 사건은 검찰이 맡아 주길 바란겁니다.

 정부와 정당 등 권력기관이 경찰이 아닌 검찰에 수사를 맡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누구도 명확한 이유를 이야기하진 않지만 ‘경찰보다는 검사가 수사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겁니다. ‘검찰이 수사하는 게 이득이 될 것이다’는 의도도 깔려있겠죠. 물론 사건을 접수한 검찰이 경찰에 사건을 내려보낼 수 있습니다. 수사는 사법경찰이 하고, 수사지휘를 검사가 하면 되니까요. 대다수 일반 국민들의 고소·고발 사건은 그렇게 처리됩니다. 얼마 전 제 지인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는데 관할 경찰서로 사건이 내려갔다고 하더라고요. ‘검찰이 수사해줬으면’ 한건데,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경찰에서 수사를 받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정치권 사건은 검찰이 경찰에 내려보내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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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강효상(왼쪽)·김도읍 의원이 7일 서울동부지검에서 김태우 검찰 수사관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와 관련한 고발장과 수사 의뢰서를 제출하고 있다. 한편 이날 예정됐던 김 수사관에 대한 3차 참고인 조사는 9일로 연기됐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강효상(왼쪽)·김도읍 의원이 7일 서울동부지검에서 김태우 검찰 수사관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와 관련한 고발장과 수사 의뢰서를 제출하고 있다. 한편 이날 예정됐던 김 수사관에 대한 3차 참고인 조사는 9일로 연기됐다. 연합뉴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검사의 수사권을 뺏으려고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으면서 검사보고 수사를 맡아달라는 건 후안무치”라며 “결국 정치권도 경찰의 수사 실력이나 수사의 공정성을 믿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반대하는 검찰 입장에서는 정치권의 이런 행태가 얄미울 수 밖에 없으니까요.

 검찰 고발뿐 아닙니다. 헌법재판소에도 패스트트랙 관련 사건이 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 등은 헌재에 위원 사보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입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왜 정치로 해결할 일을 법으로 해결하려고 들까요. ‘법대로 하자‘고 악다구니 쓰는 소시민의 싸움과 국회의 싸움은 무엇이 다를까요. 법이 결론을 내리면 그대로 따르기는 하는 걸까요.

 정치로 해결할 문제는 정치로, 대화로 해결할 문제는 대화로, 그렇게 해결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법조에 사건이 늘어나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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