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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테베 작전 때 인질들과 끝까지 남았던 ‘영웅’ 바코 기장 별세

엔테베 작전 때 인질들과 끝까지 남았던 ‘영웅’ 바코 기장 별세

임병선 기자
입력 2019-03-28 07:11
업데이트 2019-03-28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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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려날 기회가 있었지만 끝까지 인질들과 함께 했던 미셸 바코가 1976년 7월 5일 프랑스 파리로 돌아와 마중 나온 부인을 끌어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AFP 자료사진
풀려날 기회가 있었지만 끝까지 인질들과 함께 했던 미셸 바코가 1976년 7월 5일 프랑스 파리로 돌아와 마중 나온 부인을 끌어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AFP 자료사진
1976년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서 엿새 동안 인질극을 벌인 테러범들이 이스라엘 핏줄이 아닌 승객들을 풀어줄 때 이를 마다하고 인질로 붙잡힌 승객들과 끝까지 함께 했던 프랑스인 기장 미셸 바코가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훈장인 레종 도뇌르를 받았던 바코 전 기장은 프랑스 니스에서 숨을 거뒀는데 크리스티안 에스트로시 니스 시장은 “고인은 영웅이었다. 반유대주의와 야만에 협력을 거부함으로써 프랑스에도 영예를 안겨줬던 인물”이라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고 영국 BBC가 27일(현지시간) 전했다.

엔테베 구출 작전은 20세기 가장 극적인 여객기 공중납치 드라마 가운데 하나였다. 고인이 몰던 에어프랑스 AF-139 편은 1976년 6월 27일 승무원 12명과 26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그리스 아테네를 경유했는데 이 때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 조직원 둘과 연인 사이인 독일인 둘이 탑승해 여객기를 공중 납치했다. 인질범들은 바코 기장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기수를 돌릴 것을 요구해 리비아 벵가지에 착륙했다.

그곳에서 연료를 주입한 뒤 다시 이륙해 엔테베 공항에 착륙했다. 적어도 세 명의 팔레스타인 무장 전사와 우간다 군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간다 통치자 이디 아민이 기체 바로 앞까지 마중 나와 환대한 일은 세계인의 공분을 샀다. 인질범들은 이스라엘 정부에게 54명의 수감된 무장조직원 석방과 500만 달러를 요구했다.

인질범들은 열악한 터미널 안에서 인질들을 지내게 했고, 화장실이나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이스라엘 핏줄이 아닌 사람들은 먼저 풀어줘 파리로 떠나게 했다. 이렇게 해서 바코 기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풀려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기장을 비롯한 승무원 12명은 94명의 이스라엘 승객과 끝까지 남았다.

이스라엘 특공대가 7월 3일 공항 터미널을 습격해 인질범 둘을 사살하며 납치극은 막을 내렸다. 나중에 바코 기장은 인질범 중 한 명이 다른 동료들을 향해 총기를 발사해 세 번째 인질범이 숨졌다고 밝혔다.

고인은 2016년 BBC 인터뷰를 통해 기장으로서 “승객을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며 “팀원들에게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우리의 전통이기 때문에 우리는 풀려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모든 팀원들이 예외없이 따라줬다”고 돌아봤다.

당시 생존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던 베니 데이비슨은 바코 기장이 롤모델로서 전체 인질들을 대표해 인질범들이나 우간다 당국자들과 얘기하며 이끌어줬다고 말했다. 이어 바코가 최후 통첩을 하듯 한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며 “우리와 남겠다고 용감히 얘기하고는 승무원들에게 ‘난 결정을 내렸으니 여러분은 각자 원하는 대로 해라’고 말하더라. 그러자 모두가 그와 함께 끝까지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 일간 ‘Yedioth Ahronoth’ 인터뷰를 통해선 “프랑스가 우리를 구하려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스라엘보다 더 가까운 아프리카에 프랑스 군대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누군가 우리를 구하려고 달려와줄 것이란 건 알았다”고 말했다. 또 바코 기장의 용감한 태도는 인질로 붙잡힌 모든 어린이들에게 강한 영감을 불어넣어 지옥의 모든 문이 열리더라도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본보기로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이 얘기는 ‘로보캅’을 연출한 호세 파딜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영화 ‘엔테베 작전’으로 제작돼 지난해 6월 국내 개봉했는데 갖가지 혹평 속에 조용히 막을 내렸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풀려난 이스라엘 승객이 1976년 7월 4일 귀국해 가족과 껴안으며 오열하고 있다. AFP 자료사진
풀려난 이스라엘 승객이 1976년 7월 4일 귀국해 가족과 껴안으며 오열하고 있다.
AFP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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