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뇌에 ‘계급장’ 달고 태어난다

입력 : ㅣ 수정 : 2019-03-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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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도 못 푼 개미의 계급 분화 비밀
거북개미 계급별 뇌 크기·모양 분석
여왕개미, 다른 계급 비해 뇌 용적 커
신경망 구조 복잡하고 시각처리 발달

평생 일만 하도록 ‘이타성’ 가진 일개미
뇌 크기 작지만 처리력 관련 부위 발달
머리가 납작한 거북개미는 외계인의 모습과 비슷하게 보여 ‘외계 개미’라고 불릴 정도로 독특한 모습을 갖고 있다. 거북개미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도 등장한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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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가 납작한 거북개미는 외계인의 모습과 비슷하게 보여 ‘외계 개미’라고 불릴 정도로 독특한 모습을 갖고 있다. 거북개미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도 등장한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제공

# 무더운 여름, 추운 겨울을 대비해 열심히 음식을 모으는 개미를 보면서 베짱이는 그늘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며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한심한 녀석들’이라고 비웃는다. 이윽고 겨울이 찾아오자 베짱이는 배고픔에 시달리다 결국 개미에게 음식을 구걸하는 신세가 되고 개미는 먹이를 나눠주면서 베짱이의 게으름을 질타한다.
거북개미를 비롯한 개미 집단들에서 병정개미나 일개미는 생식 능력을 갖지 못한 채 여왕개미의 번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코스타리카 과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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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개미를 비롯한 개미 집단들에서 병정개미나 일개미는 생식 능력을 갖지 못한 채 여왕개미의 번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코스타리카 과학박물관 제공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듣고 읽은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내용이다. 부지런함과 노동의 가치를 설파하는 이 우화는 물론 많은 이야기에서 개미는 근면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실상 개미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왕개미, 수개미, 일개미, 병정개미로 엄격한 계급으로 나눠져 있기 때문에 이솝우화에서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개미는 일개미뿐이다. 생식 능력이 없는 일개미들은 오로지 여왕개미의 번식에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자연선택과 성(性)선택을 통한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은 이렇듯 ‘의도하지 않은’ 이타성을 보이는 개미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병정개미의 경우 방패처럼 납작한 머리를 이용해 외부의 적이 둥지로 진입하는 것을 원천 차단한다. 플로스원 제공

▲ 병정개미의 경우 방패처럼 납작한 머리를 이용해 외부의 적이 둥지로 진입하는 것을 원천 차단한다.
플로스원 제공

미국 보스턴대 생물학과와 신경과학대학원, 스페인 바스크과학재단, 바스크대 인공지능(AI)·컴퓨터과학과, 도노스티아 국제물리센터, 레이후안카를로스대 생물·지리학과 공동연구팀은 개미들의 계급이 나뉘는 것은 뇌의 크기와 그에 따른 뇌신경 조직의 밀도, 시냅스 구성 패턴들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 3월 28일자에 발표했다. 개미의 계급 분화가 인슐린과 영양 상태 때문에 나타난다는 분자적 차원에서 수행된 연구들은 더러 있었지만 신경생물학적 차원에서 계급 분화를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미국 플로리다 키스제도의 맹글로브숲에서 서식하는 거북개미를 대상으로 몸과 머리의 크기를 측정하고 뇌를 해부해 형광물질로 염색한 뒤 현미경으로 촬영해 뇌신경 구조를 관찰했다. 방패를 붙이고 있는 것처럼 머리가 납작한 거북개미는 다른 개미종(種)들처럼 여왕개미, 수개미, 일개미, 병정개미로 나뉜다. 이 중 병정개미는 납작한 머리를 이용해 평생 개미집 입구를 막는 ‘살아 있는 문’ 역할만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분석 결과 여왕개미는 다른 계급의 개미들보다 뇌 용적이 클 뿐만 아니라 인지능력과 관련한 신경망이 복잡하고 시각 처리 부분도 잘 발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짝짓기나 개미 집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뇌의 크기는 더 커지고 신경망 구조는 복잡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일개미는 뇌의 크기가 가장 작고 신경망 구성도 단순하지만 일정 시간 내에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처리 능력과 관련된 부위는 다른 계급들보다 큰 것으로 밝혀졌다. 일개미의 이런 뇌구조는 여왕개미의 번식과 개미 군집의 유지를 위한 일만 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으로 연구진은 해석했다. 병정개미는 여왕개미와 일개미 중간 크기의 뇌와 뇌신경망을 갖고 있어 여왕개미와 일개미의 특징을 모두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달시 고든 보스턴대 생물학과 교수는 “개미 사회에서 여왕개미만 번식에 나서고 나머지 개미들은 철저히 분업화하는 이유를 찾는 것은 생물학계의 오랜 숙제이기도 했다”며 “이번 연구는 크기와 모양이라는 형태학적 차이, 그리고 뇌신경망의 구조적 차이가 분업화와 계급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개미 이외 사회적 동물들의 뇌 진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2019-03-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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