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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하는 주주들에 밀린 조양호…대한항공 계기 ‘주주행동주의’ 확산

항의하는 주주들에 밀린 조양호…대한항공 계기 ‘주주행동주의’ 확산

강주리 기자
강주리 기자
입력 2019-03-27 15:34
업데이트 2019-03-2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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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이배 의원 발언에 항의하는 주주들
채이배 의원 발언에 항의하는 주주들 대한항공 주주 대리인으로 주주총회에 참석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왼쪽)이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의 건 관련 발언을 하자 이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삿대질을 하며 항의하고 있다. 2019.3.27 연합뉴스
배우자와 자녀들이 줄줄이 ‘갑질 논란’을 겪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주주들의 거센 반대로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자 이를 계기로 주주 행동주의가 더욱 확산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날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한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한항공 주주 대리인으로 주총에 참여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의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관련 발언을 하자 주주들을 격분하며 삿대질로 항의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은 찬성 64.1%, 반대 35.9%의 부결됐다. 대한항공 정관은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찬성이 2.5%가 부족했던 것이다.

주주들의 힘으로 그룹 핵심 계열사에 대한 대기업 총수의 경영권을 박탈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주주 집단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주주 행동주의란 주주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활동이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에 정착됐으나 국내에서는 재벌 총수 등 대주주의 지배력이 절대적으로 강해 그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이후 2016년 12월 국내에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가 주주 행동주의 활성화에 전환점을 제공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이 자금 수탁자로서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고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하는 자율지침이다.

이번 조 회장의 연임 실패에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채택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런 가운데 기업지배구조 전문가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지난해 11월부터 등장해 ‘갑질’로 물의를 일으킨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전횡에 주주로서 제동을 걸기 시작하면서 주주 행동주의가 더욱 큰 관심을 받게 됐다. KCGI는 지난해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한진칼과 한진의 지분을 확보해 양사의 2대 주주로 오른 뒤 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해왔다.

이에 한진 측도 KCGI의 주주제안 내용을 일부 받아들여 사외이사를 확대하고 유휴 자산을 매각하기로 하는 등 ‘그룹 중장기 비전 및 한진칼 경영발전 방안’을 지난달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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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주주권 행사 시민행동’ 기자회견에 참여한 박창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 등 참석자들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3.27  연합뉴스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주주권 행사 시민행동’ 기자회견에 참여한 박창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 등 참석자들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3.27
연합뉴스
조 회장의 패배는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잇따라 반대를 권고한 것이 한몫했다.

외국인 주주들은 조 회장이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사실을 비롯해 총수 일가에 대한 국내 시민사회의 반대 움직임과 KCGI의 주주 행동주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2대 주주로서 조 회장 재선임에 반대하고 외국인과 기관, 소액주주까지 여기에 가세하면서 조 회장은 주주들의 반대로 경영권을 잃고 말았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주주 행동주의의 확산에 대응해 이미 일부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연합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연합뉴스
SK와 BGF리테일, 오리온 등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기로 했다. 자산총액 2조원 미만으로 감사위원회 도입 의무가 없는 농우바이오, 원익IPS, 한미사이언스 등은 감사위원회 설치를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을 자발적으로 주총에 상정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대한항공 사례를 계기로 주주 행동주의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그간 주주들이 경영진과 표 대결을 벌여도 ‘바뀔 수 있겠느냐’는 시각이 많았는데 이번에 실제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인식됐다”며 “주총 표 대결 결과가 주주들이 원하는 대로 나왔다는 점에서 앞으로 주주 행동주의에 더 힘이 실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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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감서구 발산1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한 박창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 직원 연대 지부장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조양호 회장의 연임저지에 성공한 뒤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2019. 3. 27.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27일 서울 감서구 발산1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한 박창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 직원 연대 지부장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조양호 회장의 연임저지에 성공한 뒤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2019. 3. 27.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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