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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임금제 개선 미적대는 고용부

포괄임금제 개선 미적대는 고용부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입력 2019-03-25 23:02
업데이트 2019-03-26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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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보다 1년 늦어지는 가이드라인

현장에선 날짜 못 박지 않아 “못믿겠다”
“탄력근로는 서두르고 포괄임금 늦추나”
일부 기업은 자체적으로 개편 나서기도
전문가 “국회 입법으로 명확한 해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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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인 ‘포괄임금제 개선 가이드라인’ 발표가 당초 약속보다 1년 가까이 늦어지면서 현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고용노동부가 탄력근로제 도입에는 적극적이면서 포괄임금제 개선에는 미적대고 있어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를 보다 못한 일부 기업들이 정부 발표에 앞서 자체적으로 포괄임금제 개편에 나서고 있다.

25일 노동계에 따르면 고용부는 지난해 6월 포괄임금제 오·남용 지도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같은 해 8월로 한 차례 연기한 뒤 지금껏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포괄임금제 개선 가이드라인 연구용역 결과에 대해 최종 보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 뿐이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이 “상반기까지 노사 의견을 수렴해 발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장에선 ‘못 믿겠다’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포괄임금은 초과근로시간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려운 업종에서 연장·야간근로 수당을 노사 합의 등을 통해 일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원칙적으로 근로시간 측정이 불가능한 업종에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제도다. 하지만 근로시간 측정이 크게 어렵지 않은 사무직에서도 무분별하게 도입됐다. 특히 업무상 야근이 잦은 정보통신(IT) 업계에선 포괄임금제 도입을 관행으로 여겼다. 이 때문에 노동자가 연장근로를 아무리 오래 해도 기업은 정해진 수당만 지급하면 돼 ‘공짜 야근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최근 고용부가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사업장 30곳을 선정해 집단심층면접(FGI)을 실시한 결과 실제 일한 연장근로시간보다 임금을 덜 준 기업이 5곳(16.7%)이었다. 상당수 업체에서 포괄임금제가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질적 조사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현장에서 (필요 이상으로) 겁을 내고 오해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면서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 발표를 하지 않을 이유는 아닌 만큼 조만간 반드시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형석 민주노총 대변인은 “해당 조사가 사실이라고 해도 공짜 노동을 강제하는 사업장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사안이 심각하다”며 “정부가 탄력근로제는 그렇게 밀어붙이면서 포괄임금제 규제 시행을 늦추려고 하는 데엔 뭔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정부가 포괄임금제 발표를 미룬 것은 사용자단체에서 “포괄임금제 폐지에 참고할 모델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해서다. 하지만 정부가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발표 시한을 기한 없이 늦추자 일부 기업들은 정부안 없이 노사 합의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소셜커머스업체 위메프를 시작으로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포괄임금제를 없앴다. 최근 스마일게이트, 넥슨, 넷마블 등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포괄임금제 폐지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포괄임금제 폐지로 일부 사업장에서 노동자 임금이 감소해 노사 간 이견이 불거졌다. 위메프 등은 기존 포괄임금을 기본급에 포함시켜 급여 감소를 막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다른 사업장에선 “기본급을 올리면 퇴직금을 비롯해 각종 수당이 모두 오르게 돼 경영에 부담이 크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광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결국 개별사업장 사례들은 법원으로 가게 될텐데 재판에서 정부 지침은 기존 판례를 앞설 수 없다”면서 “이런 갈등을 완전하게 해결하려면 입법 절차를 통해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2019-03-26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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